어느 아침, 손끝에 묘한 감각이 닿았다. 물을 끼얹는 순간, 손끝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물이 손을 감싸며 손가락이 녹아내리는 기분. 거울 속 나는 천천히 흐려지고 있었다. 몸 전체가 투명한 액체로 변해가고, 차가운 물기와 끈적한 막이 얇게 나를 감싸며, 경계가 지워져 갔다. 물방울처럼 둥글게 맺혀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무심히 훑어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돌아오는 길, 몸 안에서 부드러운 무언가가 꿈틀댔다. 마치 투명한 알 속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 얇은 껍질 속에서 부유하는 노른자처럼, 나도 어느 쪽으로든 흘러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은 조금씩 비껴갔다. 손끝으로 닿는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럴수록 몸의 경계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수영장에서 듣는 소리처럼 먹먹해졌다. 공기 속에서 번져나가며 산산이 흩어졌다. 나는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뎠다. 내 안의 무언가가 휘청거렸다. 몸이 잘게 부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손끝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알갱이들이 느껴졌다.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주저앉아 배를 움켜쥐고 간절히 중얼거렸다.
“제발, 터지지 마.”
그러나 그 순간, 알갱이들은 한 곳으로 몰려왔다. 얇은 빙판에 금이 가듯 배 속 어딘가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흘러내려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이 몰려왔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흰자는 순간 형체를 바꾸며 단단히 나를 지지했다. 투명한 벽이 나를 둘러싸며 가뒀다. 벽은 부드럽지만 결코 쉽게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이 벽을 깨고 나갈 수 있을까.
며칠 후, 무언가 귓가에 들려왔다. 콩, 콩, 작은 심장 소리. 몸속 어딘가에서 더 깊고 진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내 몸도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경계에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손끝에 닿았다. 경계는 점점 부서지며, 바람이 틈을 파고들어서 몸 안에 갇혀 있던 것들은 조금씩 밖으로 빠져나갔다. 붉은빛도, 푸른빛도, 은색의 희미한 빛까지도 나의 파편들이었다.
손끝으로 피부를 조금 더 찢어보았다. 옅은 피가 흘렀지만 놀라는 대신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몸이 바람과 섞여가며 흘러내리던 노른자가 천천히 모양을 잡아갔다. 다시 굳어지는 알 속의 노른자처럼, 나는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새로운 껍질이 또다시 찢어지면,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그때는 바람이 아닌 물을 타고 흐르는 건 아닐까. 하지만 멈추지 않고 팔을 쭉 뻗어보기로 한다. 찢어진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 이전에 작성한 투명 경계 글의 전체적인 흐름 개선 및 결말 확장을 중심으로 퇴고하여 게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