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_4

1월 12일 (4일차)

by 영상을 쓰다
04.jpg 숙면을 취한 도미토리 305호

나는 호스텔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아주 숙면을 취했다. 나의 코골이에 힘들어했을 세계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 잘 잤다. 그리고 오늘도 일정이 바쁘다. 오늘은 SNS에서 보았던 일본의 3대 폭포라 불리는 '나치폭포'를 방문했다가 추가로 한 곳을 더 관람한 후에 230km, 기차로 3시간 30분을 이동해 다시 오사카로 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오늘도 숙소에 캐리어를 맡긴 후에 가방만 메고 나치폭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치폭포에 관한 관광 정보가 전혀 없어서 묵었던 호스텔 사장님께 물어본 바, 나치폭포만 보면 30분 정도면 관람이 끝날 것이고 옆에 신사가 하나 있는데 그곳까지 관람을 한다면 2~3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차피 오전시간을 사용하려 했기에 신사까지 염두에 두고 출발을 했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가니 하차할 정류장이 보였고, 직진본능을 따라 앞으로 향한 버스를 따라 걷다가 내가 방문할 나치폭포는 뒤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내려갔다.(정말 뒤 안 돌아보며 여행합니다.)

나치폭포 입구에 위치한 도리이

폭포 자체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함께 있었기에 입구에 '도리이'라 불리는 'ㄷ'자 형태가 세워진 신사 입구에 있는 기둥문이 있었다. 도리이란 신사 등의 신성한 장소의 입구에 세워진 큰 기둥문을 말한다. 도리이 앞은 인간이 사는 곳이고, 도리이를 지난 그 건너편은 신이 사는 신성한 영역이라고 한다. 즉 도리이는 인간계와 신의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너머에 신이 있다’는 표시이다. 도리이를 지나 바닥에 깔린 돌계단을 따라 50m 정도 내려가니 바로 폭포가 보였다. 더 가까이 가서 보려면 300엔을 내고 신사로 들어가야 했고 당연히 들어가 보았다. 나는 곧 지근거리에서 폭포를 마주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방문한 나치폭포는 일본의 3대 폭포이며 높이 133m에서 수량은 매초 1t이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폭포라고 알고 갔는데, 근래에 비가 오지 않았는지 수량이 부족해 보였다. 더구나 3년 전에 아이슬란드에서 스코가포스(Skógafoss)라 불리는 폭포를 갔었었는데(굴포스도) 웅장함이 비교가 되었다. 나치폭포에 대해 비교군이 있었고 나치폭포에 기대감이 컸던 터라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폭포를 만끽한 뒤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돌계단을 올라와 도리이를 지나 나와보니 정말 호스텔 사장님의 말 대로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04 (2)-tile.jpg 일본 나치폭포 (좌) / 아이슬란드 스코카포스 (우)
04 (4)-horz.jpg 신사로 향하는 계단 (좌) / 신사로 향하던 중 왼편에 펼쳐진 산세 (우)

호스텔에서 쥐어준 지도를 보니 아까 버스를 따라 올라간 오르막길로 가면 신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산책이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사가 생각보다 멀었고, 곧 계단지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추운 날씨였는데 이내 잠바를 벗고 긴팔을 걷어올리며 헉헉대고 있는 나를 보았다. 30분가량 올랐을까 세이간토지 3층 탑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나치폭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굉장히 멋있게 나오는 장소였다.(운이 좋았다. 2달 전에는 보수공사 중이었었다.). 내가 신사나 절을 방문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조용함이 좋아서 방문을 하는데 그날은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세이간토지 본전에는 방문객이 많았고 번잡함을 싫어하는 나는 빠르게 사진만 찍고 하산을 선택했다. 눈앞에 보이는 길로 바로 하산을 했고, 내려가다 보니 내가 신사에 올라올 때 걸었던 차도와 계단으로 된 길과는 다르게 산길을 관통해 가는 빠른 길이었고 버스 도착 15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2accaee3bbffaa-horz.jpg 세이간토지 3층 탑과 나치폭포 (좌) (출처:JAPAN in JAPAN) / 하산했던 산 길 (우)

신사로 가는 길 초입에 버스정류장이었기에 나는 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 전에 준비하는 모습, 사람들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분이 있었는데, 10살 정도로 돼 보이는 남자아이 2명을 데리고 온 어머니는 아이들의 체력을 따라 빠르게 내려오셨는지 하산을 완료하시자마자 다리가 풀리셨는지 덜덜덜 떨고 계시는 모습은 보고야 말았고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아이고…’하며 안타까움을 중얼거려 버렸다.

사람을 구경하다 보니 금세 온 버스를 타고 다시 기이카쓰우라역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인 다이지역까지 가는 열차는 지금 시각으로부터 1시간 정도 뒤에 있기에 점심을 먹고자 했고, 구글맵에서 검색을 해서 숙소 옆에 라멘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04 (7).jpg 점심은 든든히 먹어야 한다.

들어가니 백발이 성성하신 할머니께서 앉아서 반겨주시고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요리를 하시며 딸로 보이는 분이 서빙을 하시는 3대가 같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라멘과 볶음밥을 세트로 주문하였고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금방 자리가 만석이 되었다. 동네 장사여서 그런지 다들 알고 지내는 모습, 안부를 묻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캐리어를 찾은 뒤에 이곳 기이카쓰우라역에서 2 정거장 이동을 하면 있는 다이지역으로 향했다.

전철로 이동을 했고 내려야 하는 다이지역에 도착을 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혼자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한 학생이 와서 이 역은 맨 앞에서 기관사가 표를 확인하는 역이기에 기관실이 있는 열차의 앞으로 가야 한다고 일러주어 실수 없이 내릴 수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역무원이 존재하지 않는 작은 역이었다.). 다급하게 열차 앞으로 이동하느라 도와준 학생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하차 후에 전철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 학생은 뒤로 앉아 있어서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어 끝내 제대로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다.

04 (8)-horz.jpg 고래 박물관 입구 (좌) / 박물관 내 야외 수족관 (우)

다이지역은 다이지 고래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들른 곳이다. 역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5분 정도 이동을 해서 박물관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다이지 지역은 오래전부터 포경으로 생계를 꾸려오던 마을이고 박물관은 고래 관련 전시와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일본 다이지 마을의 포경문화와 관련된 유물, 정보들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다이지 고래 박물관에 입장해 바로 보이는 것은 작은 만을 막아서 만든 가두리양식과 같은 인공적인 공간이었고 물 위에 떠있는 수상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둔 모습이었다. 그 안에는 돌고래와 약 5m 정도로 보이는 작은 고래가 그 안에서 유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신기해했으며 돌고래를 굉장히 근접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체험이 있었는데 그중 바지장화를 입고 바다로 들어가서 돌고래는 만져 볼 수 있는 체험이 있었다. 추가금을 지불하며 하는 체험은 가급적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언제 돌고래를 바다에서 만져볼 수 있겠는가. 돌고래도 휴식시간을 갖게 하는지 시간표에 따라 약 1시간 뒤인 15시에 예약을 해놓고 기다렸다. 시간이 되었고 바지장화를 착용했다. 사육사와 같이 주의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걸었고 이내 바닷가에 도착을 했고 입수를 시작했다. 거의 멜빵바지와 같은 길이의 옷이었고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수압으로 다리가 조여지는 느낌에 새삼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돌고래가 유영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돌고래는 생각보다 컸다. 크기는 대략 180cm 정도로 되어 보였고 물속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은 의외로 무서웠다. 주의사항은 사육사의 지시가 없이 만지면 안 되는 당연한 것이었고, 순서대로 등, 꼬리, 지느러미를 만져볼 수 있었다. 또한 돌고래의 서비스인지 내 얼굴로 등에 있는 숨구멍에서 바람을 뿜어내어 돌고래의 숨결도 체험할 수 있었다. 돌고래를 만지는 느낌은 단단하지만 매끈매끈했고 따뜻하지만 상처로 인해 파인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지느러미를 만질 수 있도록 돌고래가 옆으로 누워 주었는데 마주치는 눈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 놀라웠다. 사육사가 아닌 일반인이 이렇게 돌고래를 가까이에서 관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색다른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단위 체험객이 많았는데, 정말로 아이들이 좋아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날에 잠이 들기 전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곳 다이지고래박물관의 일정을 빼고 빠르게 오사카로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 3층의 박물관을 구경을 시작했고 포경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1층은 미니어처 모형으로 예전에 어떻게 포경을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2층은 고래의 해부학이었다.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고래 전용 자연사 박물관 같았다. 3층은 작살의 발전에 관한 부분이었고 한국어도 된 가이드북이 없어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이지 지역의 생계이자 생업 활동이었던 과거를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박물관은 17시에 마감이었고 태양이 퇴근을 하고 서서히 일몰이 다가오는 시간에 다이지역으로 다시 이동을 했다.

18시의 다이지역 승강장

알다시피 다이지역은 역무원이 없는 역이다. 플랫폼도 단 1개뿐이다. 고래 박물관에서 무료 셔틀버스로 6명이 함께 다이지역에 하차를 했는데 나를 제외한 5분은 로컬전철을 타고 떠나버렸다. 나는 아직 30분을 더 기다려서 고속열차를 타야 한다. 다이지역은 근처에 정말 뭐가 없다. 근처에 민가 몇 곳뿐이다. 고래 박물관을 빼고는 정말 올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다. 어느새 땅거미조차 사라진 곳에서 혼자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 무서웠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2년 전인 23년도에 6 정거장 떨어진 구시모토역에서 한국인 청년이 실종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타야 할 열차의 탑승시간이 다가오니 다른 승객 1,2분 와서 무난히 플랫폼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2층에 도착을 하니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굉장히 놀라고 무서웠지만 문은 열려서 다행히 내릴 수 있었고, 한동안 저편에서 계속 울렸었다. 다행히 고속열차가 제시간에 맞춰 들어왔고 3시간 30분을 달려 덴노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이 무리였는지 얼굴에 열감이 어마어마했다. 숙소는 텐노지역에서 1 정거장 떨어져 있는 도부츠엔마에 역이었는데 무려 190엔의 지하철비를 지출해야 한다. 아까워서 힘들지만 걸어갔다. 내일인 13일은 1월 둘째 주 월요일이었고 일본의 공휴일 중에 하나인 '성년의 날'이라 그런지 텐노지역 안에는 젊은 패기의 남녀들로 가득했다. 지금의 나는 피곤에 찌들었으며 컨디션 난조로 몸살 기운이 살짝 올라온 나는 이 소란스러움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몸을 맡기며 걸어갔다. 피곤함에 조금 짜증이 올라왔고 행동이 덩달아 거칠어졌다. 도부스엔마에 역에 도착을 했고 안쪽으로 5분 정도 들어가야 했는데, 오늘의 숙소가 왜 저렴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노숙자와 부랑자들이 많은 곳이었으며 술집이 즐비해 치안도 좋지 않았다. 나는 오직 빠르게 숙소를 가고 싶은 마음이었고 거칠어진 행동거지 덕분인가 다행히 큰 탈없이 숙소에 들어왔다.

04 (12)-horz.jpg 주말 2만 원의 오사카 숙소

숙소에 들어와서도 충격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마치 홍콩의 닭장집을 연상케 하는 닭장처럼 느껴지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에어컨 실외기들, 배정받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1평 남짓한 교도소가 연상되는 이불이 깔려 있는 작은방. 샤워시설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사용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 있었지만 오사카에서 주말 1박에 2만 원이라는 가격에 불평을 누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주인장도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싸잖아?') 종일 돌아다녔기에 바로 씻으러 내려왔고 내려온 김에 밖에 나가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기와 간단히 맥주를 사서 들어와 홀짝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이다. 교도소, 또는 닭장 같은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몸을 누이니 뭐랄까 예비군복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아무렇게나 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인생의 패배자가 된 느낌도 조금은 들어서 조금은 씁쓸했다. 아무튼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날짜의 여행기는 적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고 가장 많이 지우고 다시 작성한 편이었습니다. 포경을 옹호하지 않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포경으로 살아온 일본의 문화를 제대로 보고 싶었고 국내에서는 볼 수 없기에 이참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판다처럼 극히 운이 좋은 일부의 사례도 있지만 안타까운 실정의 동물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가축이 죽는 것이 안타까워 채식을 하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고, 생업으로 일 하시는 분들도 보았죠. 특히 동물은 사람의 식食에 있어는 필수 불가결이라 생각합니다.

상황마다 다르고 사람 마다도 받아들이는 게 다릅니다. 그 모든 상황에서 아직 부족한 저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이해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재미있는 여행기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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