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인 대자연이시여, 왜 제게만 이런
한국은 깊은 산을 들어가도 멧돼지 정도 외에는 해를 입을 만한 동물들이 살지 않는다. 사람사는 데에 동물이 얹혀산달까. 반대로 미국은 동물사는데 사람이 얹혀사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일상생활이 한국 사람 눈에는 별천지다.
한인교회에 나오던 2세대 한국계 미국인 중학생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한국서 잠시 오셨는데, 모든 거에 다 ‘아! 으아!’하면서 자꾸 놀라시더란다. 뭐가 그렇게 놀라우시다니? 그 학생네 집은 잘 사는 동네에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가로수도 울창하고 동네가 초록초록한 것이다. 집 앞 산책을 나갔다 들어오셔도 ‘으아~! 동네에 이만큼 큰 나무가~ 세상에!’ 집 앞마당을 보시곤 ‘야아! 이 파릇파릇한 잔디밭 봐라!’ 뒷마당 가셔서도 ‘캬아~! 이이이 나무 큰거 봐라~’하시더란다. 미국에서 안전하고 잘 사는 동네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구글위성지도에서 교외 지역에 나무들이 울창하고 보기좋게 우거진 동네를 찾으면 된다. 나무 나이가 오래되어서 허리가 굵은 나무일수록 동네가 고색창연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랜 동네일 수 있다. 어쩌면 그걸로 동네의 품위가 결정된달까. 집을 살 때도 나무가 있냐 없냐, 얼마나 크냐, 건강하냐, 등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기 마당에 있는 나무를 제멋대로 뽑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사유재산권보다 공동선이, 자연권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에반스톤에는 울창한 공원들도 많은데, 한 번은 집 근처 도로에서 밤 중에 걸어가는 코요태를 본 적도 있다.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있는 청설모들이다. 항상 커다란 나무를 제 놀이터 삼아 바쁘게 오르 내린다. 나무 둥치 밑에 나뭇잎 더미는 칩멍크들이 두 팔 깊숙이 넣어 벌려본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다. 듣기로는 나무 열매를 그 안에 여기저기 숨겨놓고는 못 찾아서 저 난리들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통통하게 살찐 엉덩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가을이 되면 이루 말할 수 없이들 바쁘다. 겨울잠을 위해 살찌우려나보다. 아침 등교길에 보니 이것들이 밤새 무슨 클럽 파티라도 벌였는지 길바닥에 쪼개진 열매 껍데기가 한바탕 늘어져 있다.
학교내 기숙사에 살 때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앉았다. 새벽에 바깥이 궁금해서, (사실 이러면 위험하다) 기숙사 밖을 나와 미시간 호숫가로 갔다. 호숫가에 가보니 호안가에 큰 바위들 틈바구니를 너구리 가족이 한껏 신나게 드나들며 놀고들 있었다. 쓰레기통 안을 뒤지는 녀석도 있었다. 그땐 그러면 안되는 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갑자기 그 귀여워 보이던 너구리가 ‘크으으으~’하며 이빨을 확 드러내는 게 아닌가. 바로 줄행랑을 놓았다.
아내랑 만삭 사진을 찍으러 호숫가로 나갔다. 가는 길에 보니, 전에 못보던 작은 안내문들이 잔디밭에 꽂혀 있었다. 날개끝이 빨간 새 그림이 있었다. 시커먼 몸체에 날개끝만 새빨간, 붉은깃찌르레기(Red-winged Blackbird)수컷이였다. 안내문에는 ‘번식철이라 붉은깃찌르레기가 매우 예민하니 가까이 가지 마시오’라고 써있어서 조심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찬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되자 낮에는 캐나다 기러기들이 무리지어 따뜻한 남국을 향해 줄지어 날아가곤 했다. 캐나다 기러기는 새치고 꽤나 큰 동물이다. 나는 운동을 하러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달만 휘영청 떠올라 어둔 곳도 밝히는, 그런 날 밤이었다. 그런데 아! 눈 앞에 펼쳐진 정경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컴컴한 인공호수 한가득, 캐나다 기러기들이 무리 무리를 이루어 피곤한 날개를 쉬게 하려고 긴 고개를 등에 파묻고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무리에 하나씩 불침번을 맡은 새들만 지루한 고개를 쑥 들어올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어둡고 고요한 호수에 일렁여 비치는 달빛과 무리지어 잠든 기러기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다음 날 산책길을 도는데 초록색 민물가재 팔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걸 먹고 초록똥을 싸고 남쪽으로들 잘 날아간 모양이다.
캠핑 갔을 때에는 도로 위에 캐나다 구스와 새끼 가족이 길을 건너느라 양방향 차들이 한참을 멈춰 있던 적도 있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일이 내 눈 앞에서도 벌어지다니 신기했다. 부디 사고없이 행복한 가족이 되길.
플로리다 로드트립을 할 때다. 남쪽으로 가는 길에 포트로더데일 시내의 한 비치에서 해수욕을 하러 갔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뭉게한 흰 구름이 떠가고 광고용 비행기가 깃발을 펄럭이며 날아갔다. (광고 스케일 보소) 새하얗고 부드러운 모래가 쫙 갈린 백사장에 중간 중간마다 세모꼴로 울타리를 두른 봉긋 솟은 모래 무덤들이 있었다. 노란색 안내문에는 ‘바다거북이 부화중. 만지지 마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듯 쪼그리고 앉아 재잘재잘 구경들을 하고 있었다.
새니벨 아일랜드라는 관광지 바닷가에 놀러갔다. 지는 석양을 받으며 발목까지 찰랑이는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땅을 보며 기념품으로 가져갈만한 예쁜 조개껍질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살아있는 조개들이 보였다. 무슨 생각이었던지 나는 비닐봉지에 그 애들을 열심히 주워담았다. 해물라면이라도 끓여먹을라 그랬나? 정신없이 줍다보니 느낌이 쎄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무것도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잡아도 놓아주고 가야한단다.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왕전복을 마구 따다 걸린 한인들 뉴스가 나왔다. 낚시도 면허증이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에반스톤 비치에도 설정되어 있었다. 비치 근처에 나즈막한 나무 울타리를 두른 수풀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야생 조류가 알을 낳고 철이면 쉬었다 가는 곳이라고 써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무슨무슨 환경보호 비영리단체에서 관리하는데, 자원봉사를 하고싶으면 여기로 연락해서 같이 바다를 치우고 가꾸자고 써있었다.
에반스톤 동네 안에도 야생보호구역이 있었다. 동네 산책 중이었다. 고색창연한 집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다양한 색깔대로 숲속같은 가로수 밑에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산책하다가 표정있는 나무도 발견했다. 누가 자기 집 앞 가로수에 철물로 눈코잎을 만들어놨다. 허허 웃으며 걷다보니 집앞 잔디밭을 깔끔하게 가꾸어놓은 다른 집들과 달리 수풀이 우거진 집이 있었다. 페인트 도색이 멀쩡한 걸 보니 사람 사는 집인데? 거기에도 안내문이 달려 있었다. ‘이 집 마당은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청을 원하는 사람은 어디어디로 연락주시오.’ 그런 것이었다.
미국의 백두대간이랄 수 있는 애팔레치아 산맥에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국립공원에 단풍 놀이를 갔었다. 장애인이든 고령의 노인이든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잘 닦인 찻길이 산 등성등성 구불구불 이어졌다. 차에서 내려 오솔길을 들어서는데, 어디서 푸드덕 소리가 나서 위를 쳐다보았다가 악 소리를 질렀다. 엄청 거대한 칠면조가 지가 무슨 멧비둘기라도 되는 양 태연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아 칠면조가 저렇게 큰 새구나 그때 알았다.
산 속에는 커다랗게 자란 뿔을 위엄있게 자랑하는 사슴도 있었다. 물론 곰도 있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갔을 때, 공원내 숙소에 입실수속을 했다. 안내비디오를 보니, 매년 불필요한 곰 사살이 일어난다며, 제발 캠핑장과 주차장에는 아메리카노라도 그냥 놔두지 말고 모든 음식물을 공용음식물 보관함이나 개인 보관함에 넣어 반드시 ‘자물쇠’로 잘 잠궈놓으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밤새 곰이 내려와 아이스박스를 열거나 차 유리를 깨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러면 자신들은 그 곰을 어쩔 수 없이 사살해야 한단다. 역시 곰이 부엌 뒷문을 찰칵 열고 들어온다는 나라다웠다.
우리 집도 야생보호구역이 된 적이 있다. 시카고에 살때는 추운 겨울에도 집이 단열 잘되는 튼튼한 벽돌집이었는데, 애틀랜타는 더운 동네다보니 집을 나무판대기와 얇은 창호로 지어놔서 겨울에는 오히려 남부가 더 춥다. 그러다가 여름이 가까우면 ‘숲속의 도시’인 애틀랜타는 전체가 야생보호구역처럼 된다. 아파트들에 곤충이 끓기 시작한다. 운에 맡겨야 한다. 자기 집이 개미집인지, 거미집인지, 커다란 날아다니는 야생바퀴 집인지. 그래도 둘씩 살진 않더라. 우리집은 개미와 동거하는 집이었던 것이다. 손톱보다 작은 과자부스러기라도 흘리는 날에는 즉시로 개미구멍에서부터 바글바글 줄지은 개미떼를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찬장안 물엿을 물 담은 그릇 안에 넣어 해자 안 성처럼 만들어 놨겠나. 아, 내가 이 숲속에 각양각색 새떼들과 개미 바퀴들과 함께 살 뿐이구나! 이 미물같은 인간이여.
숲이 깊으니 새떼도 장난이 아니다. 주말 아침에 늦잠 좀 잘라는데 작렬하는 태양빛과 함께 시끌시끌한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깰 수 밖에 없다. 내다보니 주차장 나무 하나를 똑같은 새떼가 뒤덮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교회엘 가려고 모처럼 잘 차려입고 내려가 차 문을 열라 하니 차 엔진뚜껑과 앞유리가 온통 하얀 새똥 천지다. 아까 그 새떼였던 거다. 근데 정말 싫은 것은… 그 나무에 작은 열매들이 잔뜩 맺혀 있었는데, 새똥마다 그 씨들이 있던 것이었다. 아 정말 싫었다.
나는 불운의 아이콘인데, 그 말고 더한 불운이 기다릴 줄이야. 시카고의 가을이었다. 교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청신해서 선루프를 열고 신호대기 중이었다. 저 멀리 하늘에 캐나다 기러기떼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아 이렇게 선루프 열고 있다가 새똥 맞음 진짜 웃기겠다 크큭’하자마자 기어를 잡은 내 손등 위로 흰 똥이 촤라락. 왜왜왜 하필 저인가요. 도대체 왜! 생각해보니 베네치아 여행 갔을 때도 아케이드에 앉아 점심 먹다가 팔에 새똥을 맞은 적이 있었다. 이쯤되면 나는 불운의 아이콘이 아니라 새똥의 아이콘인가보다. 이렇게 일상 속속들이(?) 마더네이쳐Mother nature, 어머니대자연을 뜨끈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올시다.
사진-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의 비치, 본인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