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까지 눈이 왔던 기억이 있어서, 우리집은 4월에야 겨울외투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현관에 걸려있던 두텁고 긴 패딩, 라쿤털이 달린 파카, 목도리를 둘둘 걷었다. 현관장에 올려두었던 아이의 여러 물려받은 털모자들, 곰돌이가 달린 귀여운 노란 목도리도 싹 걷어 세탁기에 돌렸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로 난 길에는 이 아파트가 지어진 2005년에 옮겨 심었을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심겨있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 초록초록하고 연한, 밝은 연두색 잎새가 올라오는 것을 보자마자, 올 해는 봄 내내 추위가 오래 머물러 가시질 않았고, 안타깝게도 주말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쳤다. 그래서 전국의 벚꽃축제는 다 망했다. 제발 밤새 비바람을 잘 버텨주길 바랬던 우리 아파트 나무들의 벚꽃도, 결국 비에 젖은 길바닥에서 꽃으로 졌다. 져버렸다.
내 폰 사진첩에 있는 올 해의 봄 사진들을 쭉 내려보았다. 거기에는 찰나의 행복을 박제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가득했다. 언제 더 나이들지 모르는 우리 부모님들의 밝은 미소, 하루하루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허물을 벗으며 빠르게 자라가는 내 아이, 강화도로 놀러가서는 지는 저녁 노을에 밖에서 분주하게 고기를 뒤집으면서도 그 행복한 한 가족의 순간, 그런 것들을 잘 모셔두었다.
인화하지 않는 사진은 추억으로 남지 않는다. 나의 많은 기억들이 그랬다. 옛날 어른들 같았으면 커다란 앨범이 몇 개였을, 내 이십대는 싸이월드와 프리챌이 망하면서 허공으로 흩어졌고, 삼십대에 미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내가 외장하드에 백업까지 해놨건만, 그게 에러가 나면서 모두다 내 머릿속의 이미지로만 남았다. 매년 한 권씩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내 게으른 몸뚱이를 일으켜, 집 앞 공원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걷기는 한 시간씩 잘도 걸었지만, 달리기는 살이 쪄버린 뒤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이었다. 나도 한때는 미시간 호수가의 노스웨스턴 대학 수변공원을, 한겨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몇 킬로씩 뛰어다니던 나날이 있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나날들이 지나갔다. 그런 모양인지, 어느날 갑자기, 걷다가, 뛰어가는 청년들을 보며 나도 작고 느린 보폭이나마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 수 있었다.
이제 그 공원에는 그 밝고 청신한 연두빛 신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커다란 공원을 한바퀴 도는 산책길이 있는데, 반은 햇볕이고 반은 녹음이 우러러졌다. 그 녹음이 점점 더 짙어져 간다.
오늘 아침, 안개가 자욱한데, 마치 영국 영화에 오래된 석조저택을 오가는 주인공 같은 신비로운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이 가장 높게 자란 구간을 지나고 있는데, 그 나뭇가지들이 구부러지면서 고딕 아치 모양의 터널을 만들고 있는 걸 보았다.
대성당이었다. 나뭇잎이라는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연한 빛줄기가 들어왔다.
아직까지는 아침에 시원한 바람이 불곤 해서 땀 식히기에 좋았는데, 이제 그 한 계절이 자리를 걷어 떠나려고 하고 있다. 벌써 한 해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나는 저 성실하게 나이테를 더해가는 나무들처럼 꾸준히, 그러나 조용하게 최선을 다해왔는가? 새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이제는 한여름의 폭양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올 한 해는 차근차근히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