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인간애를 보여준 올레나 젤렌스카 -

by 비밀의 화원

단호함. 배려. 주체성. 냉철한 현실인식.

지난 주 kbs 9시 뉴스를 통해 화상인터뷰를 했던 우크라이나 영부인(올레나 젤렌스카)을 보며 떠올랐던 단어들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를 제거대상으로 삼은 적군의 공격 앞에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나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한 채로, 어디로 망명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이성적인 사고를 해 내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은 달랐다. 눈빛과 표정에는 피로함과 불안의 그늘이 있었지만,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영부인이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 더 나아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애가 느껴졌다.


인터뷰에서는 영부인이 특별히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전쟁이 끝나고 나면 우리 나라에는 장애인이 많아질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를 입은 그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재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아이들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성들의 활약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는 사실 장애인과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뻔한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던 그녀의 답변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쟁을 통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를 입은 국민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이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 수 있도록, 강대국이 아닌 자국민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실로 혜안이었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지만,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우리 나라는 강대국의 놀이터가 되었고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지만, 장애를 입은 수많은 사람에 대한 배려없이 수없이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편견 속에 수십년을 갇혀지내다 2022년 현재 지하철에서 목숨을 걸고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소설 <수난이대>에서는 6.25전쟁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주인공의 아들이 일제강점기에 태평양 전쟁에서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의 등에 업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전쟁 속에 신체적 장애를 입은 그들에게 '외나무 다리'만을 강요하며 도리어 '칩거'를 강요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마치 그것이 모두를 위한 선의인 것 마냥. 하지만 전쟁에서 상처입은 국민들의 삶을 진실로 포용하고 보살피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사랑'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큰 울림을 주었다.


그녀의 말 처럼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남성들을 대신해 아이와 노약자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우리 나라의 여성들 역시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해 내었지만, 우리는 여성들에게 '기대한다'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라면, 여자라면 당연히, 묵묵하게 밥짓고 빨래하고 아이를 교육시키며 특히나 아들을 낳아 잘 키워 도시로 도시로 내보내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인 것처럼 평생을 강요받아왔다. 하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역할을 '기대한다'라는 표현으로 여성들이 충분히 존중받을만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회 전면에서 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그녀의 한 마디 말 속에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이자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녀는 우리나라에 전쟁의 상처를 딛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비결을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 전해주길 바란다는 소망을 남겼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경제성장'의 비결이겠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에게 배워야 할 것은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그들의 삶과 역할에 대한 존중. 가장 기본적인 '인간애'가 아닐까.

"전쟁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남의 전쟁'이란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올레나 젤렌스카. 그녀의 말 한마디와 태도 속에서 영부인의 무게와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본다.


우크라이나는 오늘도 사이렌과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목숨을 잃어가며 조국을 지켜낸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세상이기에,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젤렌스카 영부인의 인터뷰를 보며 우크라이나에 그러한 세상이 반드시 꽃필 것임을 선명한 꿈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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