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무게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해
나이가 든다고 관계에 대해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도 복잡하지만,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도 나와 같지 않기에, 관계는 언제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끔 관계에서 복잡한 이슈가 생기거나 대처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묻곤 한다. 놀랍게도, 아이들의 답은 종종 내가 생각한 방법보다 훨씬 명쾌하고 현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막내 시온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의 작은 기독교 대안학교다. 등하교 라이드는 엄마인 내 몫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시온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주로 섭섭했던 일들이 더 구체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가만 들어보면, 그 사건만 빼면 그 하루는 아이에게 완벽했던 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끝나면 새롭게 배운 흥미로운 수업 내용, 고마웠던 일, 칭찬받았던 일 등 하루의 일상이 실타래 풀리듯 이어진다. 오늘은 반 친구 더함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시온이는 팽이 접기에 푹 빠져 있다. 선물로 받은 색종이 천 장을 받아 들고 요상스러운 엉덩이 춤을 추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더니, 3일 만에 쇼핑백 한가득 팽이를 만들어냈다. 어제는 그중 하나를 더함이 아버지께 선물했단다. 학교 위치 특성상 부모들이 등하교를 돕다 보니, 아이들은 서로의 부모를 잘 알고 친밀감을 나누는 일이 잦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께 자기가 만든 팽이를 건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 더함이 아버지께 선물한 팽이가 차 바닥에 떨어져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나는 혹시 자신이 만든 팽이가 망가진 것이 속상했을까 봐 걱정스레 말했다.
"선물한 팽이가 찢어져 있어서 속상했겠구나."
그랬더니 시온이는 매우 명쾌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속상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더함이 아버님께 드렸으니 그건 제 것이 아니잖아요. 제 것이 아니니 찢어져 있어도 상관이 없는데요?"
이 말에 나는 다행스러움을 넘어, 9살 아이도 이런 분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관계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생각과 감정, 행동, 물질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적절한 경계와 한계를 설정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이든 준 만큼 받지 못해 속상할 때도 있고, 받은 줄도 모른 채 인색함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9살 시온이는 자신의 정성이 들어간 팽이라도 상대에게 준 후에는 그 의미를 마음에서 덜어낼 줄 안다. 아이는 어떻게 이런 지혜를 배운 걸까?
아이와의 짧은 대화 후,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맷돌처럼 갈아 자녀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는 사랑을 배우는 과정 같다. 자녀를 키운 지 벌써 15년째, 앞으로도 10년은 더 걸어야 할 이 길에서 나는 얼마나 더 성숙해질 수 있을까? 언젠가 오늘의 시온이처럼 들인 정성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들의 제 갈 길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가 준 사랑을 조건으로 삼거나 빚처럼 여겨 실망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며, 소유물도 아니다. 아무 기대 없이,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을 배우는 것. 그것이 부모가 되어 얻는 가장 큰 선물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