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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Dec 01. 2024

일하는 엄마의 반성문

딸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

8년쯤 전인가 보다. 

7살이던 첫째가 영어유치원을 다닐 때 썼던 글이다.



This is my mom.


She works at school.

She is a professor.

She gets up at 8:00 everyday and takes subway to work.

She loves her job.



엄마라는 단어는 사랑을 제하고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딸도 글의 마지막에는 정성 들여 하트를 그리고 꼼꼼하게 색칠을 하며 

엄마인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빈이가 쓴 글들을 모아둘 만큼 정성 어린 엄마는 아니었지만

이 글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일을 사랑하는 엄마를 표현한 그 한 줄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내가 일을 사랑한다는 걸 일곱 살 딸이 알아주는 것이 대견했고

더 깊은 마음에는 딸이 엄마를 멋지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해 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멋진 엄마를 보며 우리 딸도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길 깊이깊이 소망했던 것 같다.


엄마인 내가 이제야 철이 드는 걸까?

오늘은 8년 전 딸의 글이 짠하게 마음을 때린다.

내가 그저 넘치는 사랑을 주는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의 최선을 너무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엄마의 풍성한 사랑 때문에, 엄마가 일도 사랑한다는 걸 딸이 알지 못하게 살아낼 수는 없었을까?


품 안에서 떼어내고 보니, 품 안에서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이 이제야 미안하다.

나의 딸도 또다시 나처럼 엄마도 살아갈 테니,

이 생생한 마음을 전해 주고 싶어 편지를 썼다.

나의 딸은 나보다 아주 조금은 더 성숙한 엄마가 되길 바라며.





사랑하는 나빈아♡♡♡

엄마에게 나빈이가 '엄마소개'를 영어로 쓴 이 글을 내밀던 날이 기억나.

또박또박 쓴 글씨에, 마지막 문장에서 "She loves her job."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많이 기억에 남았어. 


일곱 살 나빈이가 어떻게 엄마가 엄마의

일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때는 참 신기했어. 그리고 기억나. 

어린 나빈이가 엄마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기특하게 생각했었지.


그래서 찍어둔 사진을 오늘 외할머니 카톡 사진을 감상하다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오늘은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 들더라.

일곱 살 나빈이가 일을 사랑하는 엄마로 인해 

혹시 나빈이가 기대하고 바랬던 사랑을 다 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지,

혹시 마음에 채워지지 않은 엄마 사랑의 빈자리가 있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였어.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며 우리 가족 안에는 평안한 사랑이 넘친다고 엄마는 믿고 있지만

엄마의 믿음이 혹여 나빈이의 마음과 다를까 봐 불쑥 걱정이 들더라.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혹시나 나빈이의 마음에 그런 흔적이 남아있다면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미안해.


사실 요즘 엄마가 참 오랜 시간 동안 일로써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던 시간들 돌아보며 

일 중심의 삶을 살아온 나를 참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어.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자녀'면 충분한데, 엉뚱하게 자격들을 취하려고 

너무 애쓰고, 너무 투쟁하듯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엄마의 이전 모습을 돌아보고 있어.


그러던 차에 일곱 살 나빈이도 알아차릴 정도로 엄마는 일을 사랑했구나 싶어서 

또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되는 건데, 

사랑의 방향이 잘못 흘러갔던 것을 돌이키려고 애쓰고 있단다.

적어도 일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사랑 때문에 사명을 품고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나빈이도 하나님이 주는 사명 때문에 사명의 사람으로 사느라 용솟음치는 열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길 바래.

엄마의 미숙함을 사과할게. 

나빈이는 엄마의 엄마보다 조금 성숙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기도할께.


사랑하고, 사랑해. 나빈아.


2024. 12. 1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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