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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Jul 05. 2022

더 깊은 사랑의 인사

일생이 묻어나는 "사랑합니다!"

오전에 시어머님께 전화 안부를 여쭈었다.

지난 주말 시아버님의 건강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매 순간 궁금하다.


현재 시아버님은 거동을 못하신다.

섬망이 시작된 지 3주쯤 되었는데 퇴원 후 하루 만에 염증 수치가 올라가서 재입원 중이시다.

만성신부전으로 주 3회 투석에 당뇨라는 기저질환도 오래된지라 가족들의 마음은 무거운 상태다.


오늘 시어머님은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꺼이꺼이 우셨다.

"아버지가 일평생 나에게 너무 잘해줘서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너무 아쉽다."시며

병상에 계신 아버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시아버님은 며느리인 내게도 너무 좋은 분이셨다.

그 인격의 섬세한 빛남에 대해 다 설명하기 어렵고

언제나 자식사랑과 배려, 적절한 유머와 유쾌함,

경계를 넘지 않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셨다.


요즘은 대부분은 섬망으로 보내시지만 아버님과 눈을 맞추면 아주아주 짧은 대화가 가능하다.

이것이 대화인지, 혹은 자극에 대한 반응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 무엇이라 해도 나는 괜찮다.


내가 먼저

"아버님, 사랑합니다. 둘째 며느리가 아버님을 참 사랑합니다."

톤 업 된 목소리로 말씀드리면 아버님 역시

"허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환한 표정으로 대답하신다.


건강하셨을 때도 나는 종종 시아버님께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렸고

아버님도 그때마다 허그와 등을 토닥이시며 "사랑합니다"로 화답하셨다.


그런 시아버님께서 지금은 가만히 계시면 허공에 손을 올리며 알아듣지 못할 말씀들을 중얼거리고 계신다.

그 와중에 '사랑'에 응답하시는 아버님이 나는 그래도 참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오래전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치매노인들을 참 많이 만났다.

사람들은 치매를 몹쓸 병으로 여기지만 내게 치매어르신들이 보이는 각종 문제적 양상들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건강한 삶을 생각하며 활기차고 생산적인 활동이 가능한 노인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그 시절,

치매노인들과의 만남은 의외의 반전이었고 내 마음에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노인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과 열정을 선사해 준 의미 있는 시간들로 기억된다.


어떤 치매어르신들은 내 손을 꼭 잡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이쁜 사람, 이쁜 사람" 하신 분도 계셨고

또 어떤 분은 얼굴만 대하면 욕을 하셔서 낯 뜨거운 상황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같은 치매지만 어떤 분은 늘 즐겁고 기분이 좋지만, 어떤 분은 늘 화가 나있고 심통을 부리는 듯 보였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이런 치매의 양상을 두고 소위 '예쁜 치매, 미운 치매'라는 쉬운 용어를 들어 설명한다.

일평생 자신의 삶에서 감사, 긍정적인 생각, 감정을 활성화시키며 살았다면 예쁜 치매가 되고

반대로 불평과 부정적 생각과 태도로 살았다면 미운 치매가 된다는 것이다.

젊어서부터 오랫동안 나의 뇌를 어떻게 활성화시키며 살았는가에 따라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양상도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예쁜 치매가 있다는 것에서 인생의 마지막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그 시간에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물론 그 희망은 여지없이 내 삶이 농축된 결과라는 것이 가볍지만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시아버님의 요즘 모습을 보면 가족 입장에서는 절망적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활기차게 노년을 보내시던 중 갑작스레 병약한 상태로 바뀐 이 상황이 얼마나 비탄스러우셨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섬망 속에 있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계시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선명한 의식 상태보다 차라리 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삶 속에서 무수한 고통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 칭찬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시아버님의 병환 중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극한 고통을 보았고

섬망이 어쩌면 고통에 임하는 또 하나의 긍정적 대처는 아닐까 싶었다.


수년 전 오랜 당뇨로 인해 만성신부전 확진을 받으시고 주 3회 신장투석을 시작하셨을 때 아버님께서는 상당히 상심해 계셨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상황이다. 모든 가족이 비통해하고 슬퍼하지만 아버님만은 그것조차 모르시는 듯하다.

비통하여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과 우울, 분노를 보이는 대신 옅은 미소로 보이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지만 그래도 시어머님은 원망이 아닌 감사와 행복이 떠올리고 계시고, 자녀들은 역시 서로 다른 기억들에 감사를 느끼고 있다.


이 소중한 감사와 사랑의 대화를 멀쩡한 정신으로 또렷하게 눈 맞춤하며 나눌 수 있다면 가장 좋을 테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에 우린 다른 무언가 '딴짓' 중이었고, 그래서 지금이 이렇게도 아쉬운 것은 아닐까 싶다.


의식의 상태가 혼미해 보여도

나는 시아버님께서 일평생 만족과 감사,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오신 분이란 걸 알기에

그분의 전 생애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마음으로

오늘도 큰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한 마디 힘찬 인사를 건넨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사랑의 인사 같아서

나는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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