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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만, 보이콧하겠습니다.

사교육도 공교육도 불안한 곳에서 아이들과 살아내기 위하여!

by 자유인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 다 듣고 집에 와서 재잘재잘 전해 주었어요. 이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아이예요. 경청을 아주 잘하지요."


"우리 둘째는 남동생을 너무너무 이뻐해요. 어쩜 동생 앞에서는 그렇게 눈웃음을 방긋 보이는지 그 미소만 봐도 얼마나 이뻐하는지 알 수 있어요. 셋째는 둘째가 주는 사랑으로 크는 것 같다니까요."


"우리 집은 셋째가 조잘대서 언제나 시끌시끌해요. 어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지 이 아이는 어디서든 재미있게 살 것 같아요."



만약 누군가 나에게 세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중요한 양육 철학에 대해 물어준다면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격체'가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할 것이다.


집중해서 경청하는 일, 타인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일,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일.

세 아이들이 보여주는 면면들을 보면 제 나이에 맞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격체'의 면모를 이미 충분히 갖추며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가 곧 중학생이 되는데, 6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이들이 살아갈 교육의 장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계기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은 잘 지냈니? 어떤 일이 있었니?"라고 물으면

첫째는 재잘재잘 일과들을 읊다가 빠지지 않고 친구들이 어떤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수학과 과학 선행학습을 어디까지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첫째의 특징이 보고 들은 것을 소소하게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얘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아이가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 거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일하는 엄마인 나에게 학원이란 안전한 돌봄의 공간이고 학습은 덤이라 생각했다.

물론 학원 숙제와 시험공부도 확인하고 독려했고,

정해진 과업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꾸중도 했다.

그건 아이들이 주어진 책무를 성실하게 완수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왕 들인 돈이 아깝지 않도록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첫째 아이가 6학년 2학기가 되자 다니던 수학학원에서는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수학을 하루에 한 단원을 가르치고,

급기야 중학교 1, 2학년 과정을 동시에 진도를 나가더니

시험을 봐서 80점을 넘기지 못하면 보충학습을 시켰다.

첫째도 세 개의 시험 중에 두 개가 80점에 미치지 않아서

주 3일, 하루에 5시간씩 수학학원에서 보내는 일이 생겼다.

두 주 정도 공부를 하더니 아이도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몇몇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최근 수학학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해받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수영, 피아노, 영어 정도 학원 다닌 건 잘 놀며 지냈다는 뜻이라며

초3부터 매일 3시간씩 수학 공부를 한 아이들을 따라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


수학과 과학에는 특화된 학원들과 기초부터 고급까지 문제집 이름도 술술~

이제라도 학원 상담을 받아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


사교육 시장에서 지불한 학원비만큼 배워오는 아이들은 10%로도 안되지만

그래도 선행 수준도 실력인지라 안 하면 안 된다는 말.



이제야 현실 파악이 됐다.

나는 지금껏 불안한 교육환경에서 다수가 가는 길을 안전하다고 여기며 걸어왔던 것이다.

아이들 교육에는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그저 잘 되려니 막연하게 긍정 회로를 돌리며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격체'에 대한 교육관에 대해서는

남편 외에는 누구와도 대화가 불가능한 것 같다.

과연 주체적인 것이 무엇이고,

자유란 또 무엇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등등

하고 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런 대화를 할 동료 엄마는 없었다.


사실 나는 현실에 적응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요구하는 원칙을 준수하고

좀 불리하고 불공정해도 어금니 꽉 깨물고 견뎌내며 살아왔다.

딴생각하느니 나의 역할과 책임, 본분을 지키면 다 지나간다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의 일이 아니라 자녀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현실은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면 더 능력을 인정받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더 행복한 것도, 더 잘 사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휩쓸려 사는 것이 이상하다.

내가 사랑하는 세 아이의 삶을 생각하니, 이 요상한 교육환경을 안전하다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바로, 대안학교다.

대안을 찾는 대안교육, 물론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실은 내가 나의 인생만 생각하며 살던 시절에는

대안학교는 치열한 학업 전쟁에서 도피처이자 겁쟁이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고민의 결과이다.

사실은 어디에도 우리 아이들을 위한 안전지대는 없다.


그나마 대안학교는 나름의 가치와 교육관을 제시하기라도 한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바른 가치기반과 태도 위에 지식과 지혜의 조각도 쌓아 올리고 싶다.

가정에서 부모가 먼저 세 자녀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을 때 드는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괜한 선택을 해서 아이들의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밝히지 못할 속내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더 이상 안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곳에 우리 아이들을 살게 할 수는 없다.

사교육과 공교육을 모두 보이콧하겠다.


다행히 두려운 마음 못지않게 괴력도 솟는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아이들이 꾸고 싶은 꿈과 소망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지금 우리의 선택을 우리가 책임지며

우리 가족은 더 귀한 것들로 채워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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