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임을 다하도록 안내하는 남다름을 지향하는 교육
제자국제크리스천학교(DICS)에 입학하고 1년, 하나의 주기를 완수한 셈이다. 한 해 살이가 끝난 기념차, 고단했던 기말고사가 끝나고 즐거운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슐리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세 아이의 서로 다른 식성에 만족시키려면 갖가지 음식이 준비된 곳만큼 제격인 곳이 없다.
셋은 일단 초밥부터 시작해서 치킨, 피자, 파스타, 과일, 섞어탄산,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과일까지.
집밥이 가장 건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엄마로서 살짝 미안한 음식이지만 아이들의 먹는 즐거움과 기쁨은 최대치에 이른다.
아이 셋을 데리고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일이 몇 년 전만 해도 곤혹스러운 일일 때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먹다가도 다투고, 컵을 엎질러 식탁에 음료가 흥건해지기도 하고, 먹는 데 쓰는 에너지보다 아이들을 살피는데 드는 에너지가 더 컸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일이 즐거운 외식시간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 셋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도 아이들과 어떤 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식사 중에 부족한 것은 아이 셋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먹고 나서 정리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서 엄마로서는 행복한 선택이다.
최근 들어서는 외식을 하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급적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찌꺼기는 그릇에 모아둔다. 그리고 그릇 모양대로 정리를 하고 먹는 동안 너저분하게 흘려 놓은 음식물이 있으면 가볍게 닦아서 정리를 한다.
오늘 간 애슐리퀸즈에는 서빙로봇이 있는데,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로봇을 불러 세워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그리고 큰 아이는 물티슈를 가져다 식탁을 정리하더니 "자, 이제 갑시다." 한다.
평소 아이들에게 '나의 물건이 소중하면 남의 물건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라고 가르쳐 왔지만 이 정도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몸에 베인 습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 좋은 습관을 가르쳐도 학교로, 학원으로 다니다 보면 별난 가정교육의 룰을 옮기지 않아도 될 때가 많을 테다. 그런데 DICS로 옮겨 온 이후로는 아이들은 배운 데로 살고 있고, 학교의 생활지도와 집에서의 가르침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스러운 마음이 컸다. 학교에서는 가정교육을 탓하고, 가정에서는 학교교육을 탓하며 어른들이 기대하고 실망하는 사이 아이들은 혼란 가운데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슨 교육을 하길래 여느 아이들과는 남다른 습관이 몸에 베이도록 지도할 수 있나 싶다.
기숙사생활을 하는 첫째에게 물었다.
"식당 가서 정리정돈을 하고 나오는 건 어찌 그렇게 잘하게 된 거야?"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냥 하는 건데요? 깨끗하고 좋잖아요."
좋아서 한다는 거다. 좋다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인 선호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큰 아이의 '좋다'는 말의 의미는 도덕성이나 배려와 같은 가치가 함께 들어 있었다.
"좋은 것은 이런 것이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교육하려다 보면 어떨 때는 강요가 되기도 하고 불필요하게 세대차이 운운하며 실랑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일상의 아주 작은 행동에 질서와 예법이 베이게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가르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제대로 정렬되고 질서 있는 모습은 누구나 좋아한다. 물건도 제자리에 정리되는 것이 좋고, 상황에 맞는 행동도 그 사회에서 용납하는 합의된 질서의식에 따라 용납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이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도 나도 좋고, 남에게도 이로운 작은 소임에 충실히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이 잘 정리하고 나온 테이블에 직원이 가서 소독제를 뿌려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창 너머로 지켜보았다. 옆 테이블이 먼저 자리를 뜨고 분주한 식사시간에 새로운 손님을 맞느라 진땀을 뺐던 광경을 본 지 불과 삼십 분 전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식사한 자리에 직원이 정리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매뉴얼에 꼭 맞는 듯한 테이블로 재세팅되었다.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음식을 맛나게 먹을 자유만 있지 않다. 내가 머물렀던 어느 자리든 깔끔하게 정돈하는 태도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혹자는 '그건 직원의 역할'이라며 선 긋고 경계를 만든다. 그 날선 경계에 따라 사느라 세상살이가 더 고단해진 것은 아닐는지. 나와 너의 경계에 펼쳐진 곡선을 지나 나의 소임을 인정하려는 자세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드러운 선을 넘어 나의 소임을 다할 때 그건 상대를 위한 배려가 되고 상대는 자신도 모르게 허락된 여유를 또 다른 타자에게 시선을 돌릴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작은 일에 '진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건 아마도 부모와 학교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일관된 교육을 함께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 이 작은 대안학교에서의 교육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