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이의 재능 발견 스토리
아이 셋만 키워봐도 깨닫는 게 있다.
사람은 참 다르다는 것.
남편과 나의 DNA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다양성이 세 아이 안에서도 현란한 색을 이룬다.
이 말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속내를 드러낸다. 자녀 양육이 힘든 이유는 '통제감의 상실'에 있다. 갓난아이는 너무 어려서 우는 이유, 칭얼거리는 이유를 몰라서 힘들고, 몸이 좀 자라서 이제 돌봄의 내 손길이 덜 가나 싶어 한숨 내쉬고 있으면 이제는 생각이 자라 제 맘대로 하려고 해서 또 자녀를 향한 통제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자녀를 상대로 통제감을 가지고자 하는 부모의 의지를 빨리 내려놓는 게 속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요즘 회사에 들어오는 SKY 출신들에게 '너는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되었냐?' 물어본 일이 있었단다. 여럿에게 답을 구한 후 정리를 해보니 두 부류가 있더란다. 첫 번째 부류는 엄마가 학원 가자고 해서 차에 타면 가는 동안 한숨 자고, 도착하면 학원 가서 공부하고, 또 엄마가 무슨 학원 가서 무슨 공부를 하라고 하면 그에 맞춰서 엄마 말씀만 따랐더니 그냥 좋은 학교에 가게 됐단다. 두 번째 부류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기주도학습을 철저히 했던 유형이란다. 물어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자의 수가 더 많더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 이야기 끝에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만약 공교육 속에서 살았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자기주도학습을 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교육에 대한 양질의 정보력을 갖고 기민하게 움직일 능력이 일단 내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에피소드를 전해 준 지인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맺은 결론은 '엄마 말씀 잘 듣는 것도 이제는 재능이다.'였다. 참 낯선 결론이다. 부모님의 선한 의도를 읽고 그에 따르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자 좋은 길을 가는 것이라는 한국인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한 가치이기는 하다. 학업에 있어서도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말에 뭔가 찜찜하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도 없다.
우리 집에는 유독 잘 이해되지 않는 아이가 한 명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둘째이자 장남인 G6(초6) 과정의 시안이다. 부모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예측에서 빗나간다 혹은 낳고 키워 본 다른 자녀들과 유별나게 다른 특이점이 있다는 의미이다.
시안이는 혼자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만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냥 상상 자체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겁도 많아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아이는 단계가 올라갈 때면 꼭 실랑이를 해야 한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편안함을 즐기고 싶어 하지 조금만 난이도가 바뀌어도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년간 시안이의 학업지도를 해 온 남편과 나는 그 지점을 잘 알고 벽을 깨고 다음 단계로 올려놓을 수 있다. 아마도 웬만한 사람은 이 아이가 경험하는 두려움의 벽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깨지는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정확하게 어려워하는 지점을 찾아서 반복해서 서너 번만 훈련하면 되는데 그것을 관찰해서 돌파하게 만드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이 아이는 학업에 관해서는 재능이 없는 아이로 봐도 되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조심스럽게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시안이가 가진 장점도 너무나 많다. 어려서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오브제의 특성을 매우 섬세하게 잡아내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안다. 어떤 물건이든 그것이 디자인 측면에서 어떤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는지 찾아내는데 시안이가 잡아낸 포인트를 다시 바라보면 이 아이의 매서운 눈매를 알게 된다. 요즘은 사나고펜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완성품을 보면 일단은 색을 참 조화롭게 쓴다, 꼼꼼하고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시안이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따로 있다.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찾아내서 기쁨을 주는 재주가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친구 생일 등 기념일은 마음껏 축하하고 행복함을 즐기는 곳이다. 작년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께 꼭 필요한 선물은 교내에서 신는 슬리퍼라며 현재 선생님이 신고 있는 신발을 오랫동안 신으셨으니 기능은 유사하면서 색상의 톤만 살짝 다른 것을 선택하면 웬만하면 선생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것을 캐치해 왔다. 또, 얼마 전에는 같은 반 여학생의 생일이었는데 평소 그 친구가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책을 좋아하니 그와 관련된 제품들 중에서 선택하면 그 친구가 매우 좋아할 것 같단다. 시안이의 물건을 고르는 판단은 언제나 옳았다.
나는 시안이에게 늘 매우 독특하지만 세상에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귀한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한다. 미적 감각이 있어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감각의 쓸모가 떨어지고, 사람의 선호를 잘 이해하지만 그것을 창작할 감각이 없다면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시안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늘 활용되는 물건들에 디자인을 입히는 일을 하면 참 좋겠다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부모로서 최대의 고민은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조력자의 역할을 어떻게 하면 잘 하는가이다. 참 이해되지 않던 시안이인데 요즘들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인정하게 되면서 믿는 구석이 생기는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나는 학업에 덜 집중하고 여유를 가지고 섬세하게 느끼고 생각하며, 관계맺을 수 있는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는 대안학교가 시안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작은 씨앗에 기대를 걸고 정성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이 오래 사교육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경험을 빌어 공부를 잘하는 것은 DNA로 많은 부분 이미 결정된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나는 그의 주장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공부가 재능이 아닌 아이에게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다가는 그 아이의 숨은 잠재력까지 앗아버리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좀 다양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대안적 환경을 탐색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녀의 삶의 여정의 초입을 동행해야 하는 동반자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