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초기 적응기
어릴수록 적응은 수월한 듯
7시 40분
나와 두 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각이다.
이 시간에 출발해야 8시 10분까지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할 수 있고 나도 9시 수업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집만 이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아침 시간에는 엘리베이터를 불러서 지하 주차장까지 가는 데도 6-7분 이상 걸리는 날이 많다. 운이 좋아서 한 번에 막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갈 때면 괜히 콧노래가 나오곤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경북 경산시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주변은 과수원과 밭이 펼쳐져 있고 인근에는 꽤 큰 소 축사가 있어서 가끔은 소똥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시골 풍경 속 대안학교를 우리 아이들은 다니고 있다.
아이들을 대안학교로 보내기로 결심하면서 우리 부부는 각자 다짐했다.
"내 자식은 내가 교육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교육에 유별나다면 유별난 사람들이다.
첫째가 6학년이 될 때까지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던 대안학교다. 직전까지 살던 동네는 중학교 학군지로 전국에서도 유명했고, 초등 고학년 아이들은 자전거로 학원가를 누비며 방과 후의 삶을 살았다.
남편과 나는 저녁 산책을 좋아하는데, 그 학원가의 네온사인을 보며 "참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서 산다"며 만족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 세상의 광속 변화에 무너진 공교육과 끝 간 데 없이 몰아쳐야 살아남을 것 같은 사교육의 현장에 아이들을 맡긴다는 것이 화들짝 겁이 났다. 아마도 꼬박 반년은 씨름하듯 심각하게 고민했던 듯하다. 그리고 첫 두세 달은 언제든 공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도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초등 1학년 아이는 생각보다 적응이 쉬웠다.
학교에 가면 기숙사 생활하는 누나도 매일 볼 수 있고 제일 재미있게 놀아주는 형도 쉬는 시간마다 볼 수 있다. 고3 언니 오빠들은 띠동갑쯤 되니 8살짜리 막내가 귀여워서 늘 친절하게 대해주어 막내 입장에서 학교는 늘 즐거운 곳이다.
유치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파닉스를 좀 배웠지만 선생님이 별안간 영어로 수업하니 놀랄 만도 한데, 그런 생활 영어는 금세 익숙해져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등 6학년인 둘째 아들도 적응이 수월했다. 수월한 정도가 아니라 가장 많은 변화를 보였다. 사실 이 아이는 늘 마음에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공교육과 사교육이 믹스되어 있는 교육환경에서 치밀한 선행을 시키지 않는 부모 밑에서는 뭔가 잘하고 싶어도 부족한 아이가 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깨우쳐서 잘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초등 5학년 남자아이의 어리숙함을 생각한다면 영글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대안학교라고 교육이 여유로운 건 절대 아니다. 교육과정이 다를 뿐, 아이들은 5시에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와 담소 나눔 시간을 조금 보내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매일 2시간 이상은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가장 많은 시간은 영어 일기를 쓰는 데 소요된다.
특히, 소소한 테스트들도 자주 있고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다. 둘째가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1등을 했다.
한 반의 학생이 10명이 안되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그저 여러 재능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이 학교에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디나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둘째가 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놀랬다. 똘똘한 여자 아이를 첫째로 키우다 보니, 둘째 아들은 늘, 좀 부족하고 어리숙했다. 그런데 늘 마음에 자라던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시험이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첫 시험이지만 방법을 탐색하고 고민하며 제 갈 길을 가더라는 거다. 공교육에서는 사교육이 더 강해질 위험성과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돼서 시험을 보지 않지만 시험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대단한 경쟁이 없고, 아이들의 다재다능함이 인정되는 곳이라야 시험도 순기능을 발휘한다.
총체적인 난국은 똘똘하다고 믿었던 첫째에게 있었다.
첫째는 세 돌이 되지 않아서 스스로 한글을 떼고 한 번 가르쳐 주면 바로 적용해서 응용까지 가능한 아이였다. 피아노 학원에서도, 영어유치원에서도, 수학학원에서도, 수영강습을 받아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며 칭찬일색이었다. 그러니 수학학원에서 월반을 척척해나가는 아이였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게 임하고, 부족한 점을 엄마 아빠가 조금만 코치해 주면 2주 정도면 웬만하면 따라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이것저것 잘하는데, 자신이 뭘 특별히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다. 대안학교에서 들어가고 기숙생활을 하면서 첫째는 이 질문에서 벽을 만났다.
같은 반의 언니 오빠들을 보니 각자의 재능이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첫째는 영어능력을 기준으로 월반을 해서 한 두 살 어리다.) 공부를 잘하는 오빠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잘하고
어떤 언니의 피아노 연주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어떤 오빠의 그림 솜씨는 놀랍단다. 운동, 코딩, 콘텐츠 제작, 음악, 관계능력 등 제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버클리음대를 장학생으로 합격한 학생이 나왔다. 이런 지방의 시골학교에서!!
이전에 공교육에서 만난 아이들은 수학 선행을 누가 많이 했고, 다른 과목들까지 선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역량이 되니까 하는 거라고 믿었던 첫째 아이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아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더욱이, 아이들의 꿈도 분명하고 특별하단다. 가끔은 능력에 비해 너무 작은 꿈을 가진 게 신기하다면서도 아직까지 어떤 답도 할 수 없는 자신보다는 낫다는 부러운 마음이 아이에게서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의 재촉하는 기색을 읽은 걸까?
얼마 전 첫째는 자기 꿈은 자기가 찾을 거라며 단호한 어조로 나의 재촉에 응수했다. 답이 필요하면 엄마 아빠의 생각을 묻고, 곰곰이 생각하고 수용하던 아이여서 예전 같았으면 미래의 유망 직종을 물으며 가장 그럴듯한 것을 택 1 하여 영혼 없이 해보겠다고 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자기가 그 여정에서 주체자가 되겠다고 하니 영글어져 가는 시간이 온 듯하다. 나는 이렇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싶다.
대안학교는 다중지능 중 타고난 강점을 확실하게 살려주는 교육으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물론, 학교마다의 독특한 교육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적극적인 콘텐츠 생산작업 외의 디지털미디어 사용을 철저하게 금지한다. 이 교육만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는 지름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