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런 후광이 있다니!
어디까지 최선을 다해봤니? 진로정할 때 말이야!
"교수님, 지금 전공이 제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하지요?"
"교수님, 제가 알던 사회복지학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얼른 다른 길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 저는 사회복지 공부는 재미있지만, 사회복지사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진로가 너무 고민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모두 진로에 관한 질문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전공 관련 질문보다 이런 질문을 더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신이 나에게 허락한 특별한 행운이 있었다면 진로를 비교적 빨리, 명확하게 설정한 것이다. 더군다나 정한 후 20년이 넘도록 후회 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대학시절 심리학을 전공하던 나는 인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그럴듯한 이론들로 설명하는 이론가들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서로 다른 이론가들이 보여주는 인간 이해에 관한 설명들이 변증적으로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될 때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을 선사했다.
전공 공부에 빠져 있던 때, 고시공부로 미래를 준비하던 친구들은 그깟 심리학에 빠질 열정으로 차라리 같이 고시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다. 김밥 한 줄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도서관에 앉아서 늘 전공 공부만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살짝 과했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필요보다 만족이 주는 학문의 묘미를 알았다고나 해야 할까? 친구들의 조언은 귓등으로 들을 뿐이었다.
전공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일찌감치 석사 과정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고 대학 4학년 때 세부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여기서 노력이라 함은 관심이 가는 분야라면 타과 수업도 찾아서 듣고 필요하다면 전공 교수님은 물론이고 타과 교수님께도 적극적으로 상담을 요청하여 내 고민을 말씀드리고 적극적으로 해답을 구하려 했다. 전공에 관한 전망보다는 학업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했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4학년 1학기에 수강한 '성인노인심리학'이라는 과목을 잊을 수가 없다. 솔직히 20여 년 전 대학의 강의는 요즘처럼 학생 친화적이지 않았다. 성인노인심리학 수업도 그랬다. 중년 여교수님의 교양 있고 낮은 톤의 목소리는 수업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에게는 수면유도제였다. 캠퍼스의 여름은 젊은 혈기 때문인지 유독 일찍 찾아온다. 한창 학기 중이던 5월 어느 날, 수강생의 반쯤은 졸린 눈에 힘을 주며 최선을 다해 졸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바로, 그때다!
원하는 이상형을 만나면 그에게서 후광이 비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않나? 나는 이상형이 아니라 수강생의 절반이 졸며 수업을 듣고 있는 강의실에서 그런 후광을 보았다. 강의실 창문 너머 들어온 5월의 따뜻한 햇살 덕분인지 난데없이 교수님께 후광이 비치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은 내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노인에 대해 공부하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노인과 노년기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이 지혜롭고 풍요로워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신념이 되어 가슴에 꽂힌 것이다. 어떻게 그런 기막힌 찰나의 경험이 내게 찾아왔는지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선물 같은 경험이었고 내 삶을 신비로 연결해 주는 감사한 사건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석사과정에서 어느 교수님께 지도를 받아야 할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노인', '노년'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서적들을 한 달간 차례로 빌려 탐독하기 시작했다. 국내 논문들도 검색하며 곧 만나게 될 지도교수님을 찾아 나섰다. 그 당시 국내 저명학자로 (고) 윤진 교수님을 발견하였다. 드디어 나를 지도해 주실 교수님을 찾은 것 같아 너무 기뻤는데, 확인해 보니 바로 몇 해 전에 타계하신 분이셨다. 그때의 실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실망을 딛고 일어나 성인노인심리학을 강의하신 교수님을 처음으로 찾아뵀다. 아쉽게도 교수님의 전공분야는 아동기여서 중년기 이후 전문가가 아니니 주소지를 잘못 찾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공부를 계속하려면 유학을 생각하던 당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지도받을 교수님을 열심히 찾고 있는 내게 취업에 관한 현타를 날리지 않은 교수님께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다.
다음으로 타과에서 수강했던 노년학 담당 교수님을 찾아뵀다. 자신도 노인분야이기는 하나 가정학 분야에서 노년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사회복지학에서 노인을 공부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졸업 후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전환하여 노인복지분야의 전문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교수가 된 지금에 와서 23살의 나를 떠올리면 자기주도성이 강한 기특한 학생이었다.
나는 진로에 관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해수욕장에 놀러 가서 가장 재미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무엇이겠니?"
난데없는 질문일 수 있다. 이 질문에 열에 아홉은 "바다에 들어가서 풍덩 빠져 노는 것이요."라고 대답하거나 그 비슷한 답을 한다.
그때, 나는 한 가지를 더 질문한다.
"바다에 빠져 신나게 물놀이하며 놀 듯, 전공에 대해 푹 빠져 본 적이 있니?"라고.
그럼, 대부분은 그 정도로 노력한 적은 없다고들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선택만큼이나 '이건 절대로 아니다'라는 선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답을 얻든 그 선택에 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분명 노력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물에 푹 빠져 신나게 놀 듯, 빠져본 다음에 "이것이다" 혹은 "이것만은 아니다"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이런 노력이 없는 확신이나 선택은 나의 인생 그림에 있으나 마나 한 점은 될 수 있으나, 내 인생의 중요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의미 있는 한 점'이 되지는 못한다.
대학 4학년 시절, 지루한 어느 강의 시간에 후광과 함께 찾아온 진로에 관한 확신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첨벙거리며 신나게 놀던 내게 신이 준 선물이었다. 내게 허락된 선물이라면 나의 인생 후배들에게도 모두 열려 있을 것이다. 일단 신나게 놀아보자! 분명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