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기울이지는 말자!

by 자유인

어제 지난 3년 간 재직했던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른 대학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처음으로 교수라는 직업을 갖기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1년 반의 시간은 냉온탕을 오가는 취준생의 심기로 살았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교수 채용공고를 생각하면 교수가 되기까지 무엇인가를 준비한다는 건 참 막막한 일이었다. 전공분야에, 세부 연구분야가 조건에 맞아야 지원서류라도 내볼 수 있다. 거기에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이력이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기본사항만도 까다로운 교수 임용조건 때문에 막상 '내 자리'처럼 보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운 좋게 이 기본 조건에 딱 맞더라도 지원하고 나면 경쟁률은 또 어마 무시했다. 특히, 사회복지분야는 대학교수 채용에서 지원자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한 학과에 속한다. 그뿐인가? 서류심사에 강의 시연에, 면접까지의 과정이 한 번 시작되면 2달 정도는 기본이니 매 단계마다 결과를 기다리며 겪게 되는 심리적 압박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다.


처음 전임교수 임용에 성공한 것이 2015년이었다. 합격소식을 통보받았을 때의 기분은 마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다는 건 그만큼의 수고가 따른다.

얼마나 훌륭한 교육자가 될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대학생들을 교육하기에 충분한 전공지식과 연구 역량을 갖추었는지,

대학의 교수사회에 걸맞은 품위 있는 행동을 할 것인지... 등등.

교수가 되고 보니, 교수되기란 더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참 흥미로운 사실은 교수 채용을 준비하던 내가 대학측의 입장을 다 알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난 다만 기본에 충실했을 뿐이었다는 점이다. 정량평가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 밤낮없이 읽고 쓰며 연구에 몰입했고, 1주일에 한두 번 시간강사로 강의를 할 때면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좋은 강의를 하려고 애썼다. 온전히 내게 허락되고, 할 수 있는 일에만 몰입하는 것밖에 더 이상의 최선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막막해 보였던 동굴 속 생활은 끝나 있었고, 그렇게 소원하던 교수가 되어 있었다.


두 번을 옮겨 3월부터는 새로운 대학으로 소속이 바뀐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했을 때 의아한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부지런도 하다!"

"왜 만족이 없니?"


나도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다시 거쳐가고 싶지 않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기약 없는 도전에 실패가 다반사인 치열한 경쟁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런데 말이다. 나는 만족을 몰라서가 아니라 성장과 도전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사람 같다.

안주하는 것,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작은 불빛이라도 내가 가는 길 저기 어딘가에 비추인다면 나는 호기심에 일어나 그곳에 가보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부지런도 하다는 말은 참 이상하게 들린다.



부지런하다 :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가 있다.

부지런도 하다 : 어떤 일에 '과하게' 열심히, 꾸준하게 임하는 태도가 있다.


이 정도의 어감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부지런함과 과한 부지런함의 경계가 무엇인지 배워 본 적이 없다. 삶은 내게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늘 정도를 걸으며 극한의 부지런함으로 임해야 했다.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관절이 아파서 병원엘 갔더니 노인의 고관절이 되어 있다는 의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성경에 나오는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축복을 받기 위해 결연한 의지로 임했던 야곱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나의 과한 부지런함이 성경의 야곱처럼 내 엉덩이뼈를 다치게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축복이 남는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 무엇'에 대한 지극한 애정 없이 산다면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만족 :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왜 만족이 없니? 이 말에서 만족이란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을 의미한다. 나는 내 삶의 여건들이 어떠하든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대학을 옮기는 일(누군가에게는 직장을 옮긴다는 일, 혹은 중대한 인생의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만족이라는 단어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그것을 위해 도전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번 임용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은 나의 큰딸인 것 같다. 기쁜 소식을 안고 현관을 들어서는 내게 "엄마! 도전! 성공!"이라며 환한 표정으로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해 준 딸의 모습에서 엄마로서 받을 수 있는 존경과 사랑을 흠뻑 받은 기분이었다.


도전은 창의적인 불평에서 시작된다. 내 삶을 조금 더 아름답고 귀하게 가꾸고 싶은 욕구가 바로 창의적인 불평을 만든다. 그리고 창의적인 불평은 조용히 내 자리에서 '부지런함'을 실천하게 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나의 세 자녀들과 제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나의 이런 면모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에서 오늘 같은 내일, 내일 같은 모레를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삶의 기본 태도가 되어 그들 각자의 가슴에 품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주인공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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