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낯선 그들과의 관계
낯선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자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상대도 나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이해해 준다면 세상을 사는 게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공감능력을 키우면 오해의 깊이를 줄일 수 있고, 오해했더라도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돌이켜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이런 과정도 어느 정도의 신뢰가 기반이 되고 상대에게 시간과 감정, 생각을 할애할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조차 여의치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사람을 만났을 때 저 사람과 내가 서로 다를 가능성, 차이가 있을 가능성, 나아가 서로 갈등할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는 게 우리를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며 네 마음이 내 마음이려니 믿는 순간부터 관계에서는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불일치가 더 커 보이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한탄과 배신에 우리의 마음을 쏟게 된다.
사실 너와 내가 하나의 생각과 감정으로 일치감을 경험한다는 것은 의외로 행운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 행운을 일반적인 사건으로 여기고 기대감을 갖기보다 너와 나의 다름 가운데 공존과 공유를 상상하는 게 살아가면서 관계에 쏟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 테다.
또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모든 사안마다 확실한 주관을 갖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관심 없는 분야나 이슈에까지 정리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직하게 자신이 그 이슈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식견도 없다는 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첫 번째 용기가 필요한 지점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저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은 꽤나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너와 내가 다름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에 걸려 소통의 지뢰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모른다고 이야기할 용기 못지않게 상대와 다른 색깔의 나를 드러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상대와 나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편안하게 여길 수 있지만 그 편안함을 좇아 자신의 색깔을 숨긴다면, 맞지 않은 옷을 오랫동안 걸치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금세 우리를 지치게 만들 것이다. 편안한 옷을 입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의식적인 용기를 내지 않으면 쉽게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