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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박천순 Oct 14. 2022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국수를 끓여야지, 그전에 나는
갯벌에 길을 내는 바지락 단단한 무늬를 생각한다
어머니 몸속 나이테 같은

썰물을 기다려 바다로 나간 어머니는
허기진 배 대신 붉은 다라에 바지락 가득 채워 나왔다
검은 갯벌에 얼굴을 묻고
지아비 사라진 바다 너머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했는데

나도 폭폭한 갯벌 한 자락 키우는 아낙
시간이 시시때때로 시들해지는 겨울날이면
뜨겁고도 시원한 칼국수를 끓인다

바지락을 삶아서 까고
감자 호박 당근 신선한 야채 듬뿍
생면은 덤인 듯 넣어주면
서로 끌어안고 보글대는 솥단지 속
풍성하다, 큰 대접에 한 가득씩
발개진 볼로 먹는 식구들
저녁이 온기로 출렁이고 있다

바지락 속살 같은 노란 불빛 아래
일탈을 꿈꾸던 가슴 슬며시 내려놓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내일도 견딜만할 거 같다



ㅡㅡ시집 <나무에 손바닥을 대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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