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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스테디셀러 삼국지

낙동강에서 장강을 느끼다

by 소주인

아직도 내 책꽂이 한켠에는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 삼국지 62권이 꽂혀있다. 아마 내 또래라면 많이들 가지고 있었거나 혹은 친구 집에서라도 읽어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만화를 호환마마처럼 여기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62권이나 되는 만화책 한 질을 사 준 이유는 아마 그것이 삼국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능 만점자가 삼국지를 읽었다는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던가, 뭐 그런 이유로...또 당시만 하더라도 전집을 판매하는 출판사 영업사원도 많았었다. 그래서 내 친구네 집에는 55권짜리 만화 중국고전이 구비되어 있었고, 우리 집에는 만화 삼국지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서로 빌려보곤 했다. (친구네 집에 있던 만화 중국고전은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짐 정리를 하던 와중에 우리 집으로 왔다.)


아무튼, 사람 목이 무 자르듯 쑹덩쑹덩 잘리는 만화를 보고 자란 초등학생들은 당연히 수능 만점을 받는 고등학생으로 자라지는 못했다. 그래도 적어도 고등학교 도서실에 구비된 소설 삼국지(이문열, 황석영 등등...)를 뽑아서 읽는 데 거부감이 덜하긴 했다. 삼국무쌍 등의 게임을 시작하거나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 또래에서 삼국지는 주로 만화와 게임으로 널리 공유되는 서사였던 것 같다.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의 상식을 시험해보겠다며 '관우 아세요?'라는 질문을 하는 얼빠진 인간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삼국지는 세대를 넘어서 끊임없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창조되는 매력적인 서사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삼국지는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삼국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역시 적벽대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저 유명한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고, 이 시는 우리나라로 넘어와 창으로도 불렸다.


소동파는 장강의 적벽을 바라보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김광계는 낙동강에서 배를 띄워 노닐며 적벽부를 읊었다. 소동파가 본 그 풍경을 김광계는 비록 볼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소동파가 놀았다고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상류에서부터 노를 젓지 않고 삿대도 짚지 않은 채 강물이 흐르는 대로 배를 내맡기는 것이다. 장강과 낙동강이라는 스케일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는 법. 풍류도 그렇다.


김광계와 다섯 명의 벗을 태운 배는 물결을 타고 천천히 흘러갔다. 동쪽 산봉우리에는 달이 떠오르고 구름이 걷혀 환히 빚났다.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적벽의 고사를 이야기하던 일행들은 서서히 흥이 올라 각자 적벽부를 읊었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임술년 가을, 칠월 보름 다음날,

소자가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명월의 시를 읊고 그윽한 구절을 노래하노라.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馮虛御風 而不知所止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櫂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조금 있으니 달이 동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한다.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며, 물빛은 하늘에 닿았는데.

마치 한줄기 갈대와 같이, 만경창파를 넘어 아득히 가노라.

드넓은 허공에 기대어 바람을 탄 듯, 멈출 바를 모르는 듯,

표표히 속세를 떠나 홀로 서있는 듯,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

그리하여 술을 마시고 흥겨워,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도다.

노래하니 '계수나무 노와 목란 삿대로 맑은 달그림자를 치며 흐르는 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구나 나의 회포여, 미인을 기다린다 하늘 저편에'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이가 있어, 그 노래에 맞추어 회답한다.


(후략)



풍경이 시 읊는 흥취를 더하니, 김광계는 허공에 뜬 듯, 바람을 탄 듯 낙동강의 흐름에 몸을 내맡겼다.

김광계도 한 번쯤 장강에 가 보고 싶었을까?

어디서 보니 장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지어진 호텔이 있다고 한다. 중국 황제도 그런 풍경은 보지 못했으리라. 지긋지긋한 역병시국이 끝나면 한 번쯤 가 보고 싶다.


<매원일기>


정축년(1637, 인조15)-김광계 57세


7월 17일 계미

밥을 먹은 뒤에 예산禮山⋅일보一甫⋅이직以直⋅경익景益⋅금씨 아재와 함께 강 언덕으로 나아가 배를 띄우고 중류로 내려와서 적벽대전의 고사를 읽고 술을 마시면서 시를 지었다. 강재江齋에 도착하여 또 술을 마시니 꽤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흥취가 있었다. 또 임장任丈과 함께 모여 자면서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러 사람 중 떠난 사람이 많고 아이 염�은 따라왔다.

十七日 癸末 食後與禮山·一甫·以直·景益·琴叔, 出江岸泛舟, 中流而[下], 讀赤壁故事, 酌酒賦詩. 到江齋又飮, 頗有羽化登仙之興. 又與任丈會宿夜話, 諸人多有去者, �兒來從.


7월 18일 갑신

저물녘에 배에서 임장任丈을 송별하였다. 여러 사람은 다 떠나가고 나만 강사江舍에 머무른다.

백로白露 팔월절八月節이다.

十八日 甲申 向晩送任丈于舟中. 諸人皆去, 余獨留江舍. 白露八月節


8월 5일 경자

아침에 이직以直이 계상에서 왔다. 밥을 먹은 뒤에 이직과 신 유사申有司와 함께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워 반타석盤陀石에 닻줄을 매고 노닐며 바라보니, 어진이가 그립고 옛 일을 회고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각자 짧은 율시 몇 수를 읊었다. 이직은 저녁을 틈타 갔다.

五日 庚子 朝以直自溪上來. 食後與以直及申有司, 泛舟濯纓潭, 繫纜盤陀石, [瞻]眺游泳, 多有慕賢懷古之思, 各詠短律數首. 以直乘夕去.



기묘년(1639, 인조17)-59세


6월 15일 신축

임 예산任禮山이 오고, 백회伯晦와 사숙士夙도 왔다. 여러 벗과 함께 높다란 마루에 열을 지어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진 뒤에 여러 벗과 함께 천연대天淵臺 아래에서 배를 띄우고는 노도 젓지 않고 삿대도 잡지 않은 채 강물이 흐르는 대로 내려갔다. 애일당愛日堂아래에 당도하니 동쪽 봉우리에 달이 떠오르고 사방의 잔 구름이 걷혔다. 거리낌이 없이 강을 오르내리고 질펀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두 편을 외우니,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몬다는 말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었다. 회길晦吉을 불러 함께 배를 타고 올라왔다.

十五日 辛丑 任禮山來, 伯晦·士夙亦來. 與諸友列坐高堂, 酌酒叙話. 日落後又與諸友, 泛舟天淵臺下, 不施柁櫓, 順流而下. 至愛日堂下, 月出東峰, 纖雲四卷, 恣意沿泝, 觥籌交錯, 誦坡翁赤壁二賦, 憑虛馭風之說, 信不虛也. 招晦吉同舟上來.


6월 16일 임인

여러 벗은 다 흩어져 떠나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十六日 壬寅 諸友皆散去, 余亦還家.






이 때 조정에서는...


1637년(인조 15) 7~8월

전란에 소실된 종각 재건

청에 갔던 사은사 귀국(잡혀간 소현세자의 소식도 전해짐)


1639(인조 17) 6월

청의 칙사 대접 준비

병자호란 전후처리(상/벌)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KYH_7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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