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족류를 좋아한다. 이가 약한 편이라 내가 먹기에 적합한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늘 그렇듯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그 여부는 애정을 판가름짓지 못한다. 좋아해. 낙지 오징어 주꾸미.
하지만 물에 넣은 두족류는 미안하지만 사랑할 수가 없다. 재료인 두족류가 문제가 아니라 조리 방식(?)인 탕이 문제이다. 탕은 왜 그런지 몰라도 잘 손이 안 간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 때문에 탕을 잘 못 먹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트륨 섭취를 줄여주니까 언젠간 나에게 고마워 할 날도 올 것이다.
조선시대 일기에서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식문화에 대한 언급이다. 이번에는 연포탕 이야기를 접했다. 오늘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연포탕은 낙지를 넣고 끓인 탕이다. 하지만 이것은 낙지가 잘 잡히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연포탕에 낙지를 첨가한 음식이다. 본래의 연포탕은 두부가 주가 되는 음식이다. 연포탕(軟泡湯)의 연(軟)은 부드러움을 뜻하며, 포(泡)는 두부를 뜻한다.
연포탕을 만드는 방법은 두부를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지지다가, 닭고기와 섞어 국으로 끓이는 것이다. 굴이 나는 지역에서는 굴을 넣어 먹기도 한다. 연포탕은 콩을 갓 수확한 10월에, 한창 살이 오른 닭을 잡아 만드는 시절음식이기도 하였으며 겨울철 몸을 보해주는 보양음식이기도 하였다.
여러 문헌에서도 연포탕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가장 자세한 기록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8 「치선(治膳)」 상(上) 닭고기요리[鷄肉膳]의 연포국 만들기[造軟泡羹法]에 나온 내용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국은 겨울철에 먹어야 좋다. 쇠고기는 돼지고기만 못하고 돼지고기는 꿩만 못하고 꿩고기는 살찐 암탉만 못하다. 닭을 깨끗이 손질하고 쇠고기와 함께 푹 삶아 쇠고기는 건져내고 닭고기는 가늘게 찢어 놓는다. 한편 두부를 만드는데 단단하게 눌러야 하며 납작하게 썰어서 기름에 지진다. 끓여놓은 국물에 지진 두부를 넣고 간을 맞춘 다음 생강, 파, 표고, 석이 채 썬 것을 넣는다. 별도로 고기국물을 조금 떠서 밀가루 즙을 만들어 넣고 달걀을 풀어 국물에 넣어 잘 저어서 고루 섞이게 한 다음 준비한 닭고기와 달걀 황백지단 채를 그릇에 담아 국물을 부어 낸다.”
연포탕은 시절음식으로 먹었을 뿐 아니라 맑은 국이었기 때문에 제사나 상이 났을 때에도 끓였다.
금난수는 제릉 제사를 지낸 자리를 대강 정돈하고 제릉의 원찰인 연경사(衍慶寺)에 들어갔다. 사찰에서는 으레 두부를 만들어 공납으로 바치곤 했다. 이 날은 사찰에서 마침 두부가 만들어져서 따뜻하고 신선한 두부를 맛볼 수 있었다. 연경사의 승려들은 연포탕(軟泡湯)을 끓여 추위에 떨고 있는 금난수에게 대접하였다. 금난수가 연포탕을 먹고 있으려니 윤기백과 이반룡, 김백소도 술을 들고 절로 들어왔다. 군식구가 늘어나서 연경사 승려들의 귀찮은 일도 늘어났겠지만, 탕 안주로 술 한잔씩 걸친 양반들 눈에 승려들의 표정이 들어왔을 리는 없다.
1579년(선조 12)- 금난수 50세
11월 14일
향사香使 장단 부사長湍府使 안여경安汝敬, 집사執事 풍덕 군수豊德郡守 심인겸沈仁謙과 삭녕 군수朔寧郡守 아무개가 왔다.
11월 15일
제사를 지낸 뒤에 연경사衍慶寺에 들어가 연포탕을 먹었다. 윤기백尹起伯이 보러오고 이반룡李攀龍과 김백소金伯沼도 술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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