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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감상기

군부정권

새해연초에 딸내미부부와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천만관객을 모으고 있는 시사영화의  관객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최근 상영되는 영화 중에서   "서울의 봄"과 "노량"을 저울질해 택한 결과였다.


충무공 최후의 해전장소를 그린 영화가 노량이다.   하지만 수년 전 개봉됐던 명량의 아류작일 것이라는 나만의 예단이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서울의  봄은 사십여 년 전  신군부의 정권찬탈을 그린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 벌어졌던 사건이고 그 내막은 거의 공개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울 것이 없는 논픽션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실존인물 하나하나의 화려한 배역 캐스팅에 흥미가 갔다. 배역을 맡은 톱스타 배우들의 연기력이 궁금해졌다.

물론 젊은 엠지세대인 딸내미부부는 다소 나와는 다른 느낌으로 접했을 수도 있다.


일단 영화에 몰입하게 되니 그 당시 시대상이 나의 의감을 일깨웠다.

무력을 사용한 법치의 유린이 가증스러웠다.

우리 군의 주요 보직을 사조직으로 잠식해 둔 전두광일당과   우여곡절 끝에  비하나회 출신이 유일하게  차지한 주요 보직 수경사령관과의 대립양상이 주요 장면이다.


강한 소신과 투철한 애국심으로 불의에 대처하는 수경사령관 장 장군이  크게 부각돼 있다.


수도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날 벌어졌던 희대의 총격전을 생각해 보았다. 정치군인들의   본분을 잊은 사고의 일탈이 가져올 수 있는 무모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영화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일명 "서울의 봄"시기,  시골의  중학생이었다. 중1 때  가을 소풍날 아침 박통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12.12가 통치권력의 대이동인 쿠대타였다는  사실조차 관심 없던  때였다.

순수한 시골 소년에게  하극상이란 용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박통의 시해장소에 동석한 피의자 정총장의 체포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 후 합수부장의 수사상황  브리핑에서 전소장의 면상을 Tv에서 처음 본 기억이 있다.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서울의 봄이 되었다. 중학생 신분으로 그 시절 정치상황의 전개내용이  크게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계엄선포와 광주항쟁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해 봄 5월이 되어  5.17 조치가 내려져 계엄이 확대되고 광주에서 사태가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당시 통치자 최통이 전라도 모처까지 내려가 광주시민께 자제를 간청하는 방송을 했던 것도 기억한다.


물론 대학시절 호기심이 발동하여 "서울의 봄"시기 발행된 모일간지 정치면을 모두 훑어본 경험이 있다.

힘의 균형이 신군부로 쏠린 상태에서 그 당시 정치판은 언론통제, 법치유린등 민주적 국정은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후 5공 정권시절 9시 뉴스가 가관이었다. 소위 "땡전뉴스"이다.

유 모 기자였던가, 그가 매일 전하던  9시 시보 땡이 울린 후부터 5분간 지속된 뉴스를 말한다. 즉  전 대통의  하루일과 홍보 브리핑 시간이었다.


정통성이 없던 정권의 특징은

홍보에 매달리고 치적에 목을 맨다. 따라서 대형 건축물, 기념관 등 건립을 선호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에 묶어놓고 싶어 한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등 당시 3s정책이었다.


영화에서 그린 그 시절, 서울의 봄은 군화발에  처참히 종식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도도한 민주화 물결은 몰아치고 있었으니 군부정권의 민낯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의 대학시절 80년대 중ㆍ후반

상아탑은 거의 최루탄의 포화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끝났다. 그 어두운 시기  투사들의 희생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민주주의는 점점 더 꿈틀대며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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