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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현 Jul 22. 2021

청춘의 다이어리

흑역사는 덤

다이어리에 감정을 기록하는 것.

수년간 해온 나와의 약속 이자 습관이다.

요즘은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와의 새로운 약속과 습관을 만드는 중인데

과거의 나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기록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책장에서 지난날의

나의 기록이 담긴 다이어리를 한 권 한 권 꺼내기 시작했다.


혹시 브런치에 써도 좋을 만한 주옥같은 글을 발견하지는 않을까?

감정이 센티했을 때 썼던 기록이 아주 괜찮았던 거 같았는데 

따위의 설렘이 다이어리를 꺼내는 내 손끝에서 느껴졌다.


마냥 주목받고 튀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붉은 계열의 커버

튀지 않고 조화로움을 익혀갔던 20대 중반의 베이지 계열의 커버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은 20대 후반의 노란색의 커버까지

커버의 색부터 나의 심경 변화들을 느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과거부터의 나를 읽어갔다. 

주옥같은 문장들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 내가 연애를 제대로 못한 이유를 알겠다.'라는

나의 흑역사에 대한 대답이었다.


귀여운 흑역사이지만, 난 참 사랑에 많이 빠졌었구나...

진정한 사랑은 요즘 들어서 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날 호기심으로도 대한 인연들에 진심으로 설레어하던 아이였구나.

'이게 사랑일까?'라는 오그라는 문장 뒤, 

다다음장을 넘기면 금세 짧은 인연에 대한 상처로

'사랑이란 무엇일까?'

'남자들은 왜 그럴까?'

순수하고 예쁜 푸념을 참 진지하게도 적어놨다.


미소 지어지는 나의 흑역사를 읽고 난 뒤,

힘들다, 답답하다, 슬프다, 우울하다로 기록되어있는

응원해주고 싶은 과거의 나를 읽어보았다.

내가 나를 모를 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를 때,

남들이 원하는 나로 맞추며 살며

일하는 나와, 존재로서의 나의 충돌이 잦을때

그때. 나는 다이어리를 찾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라는 세상에 내던져져 내가 나를 알기도 전에

세상의 잣대에 마구잡이로 평가받고 판단되었었구나.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구나.

그 혼란스러움을 해쳐나가는 방법도 서툴렀구나.

남들과 비교하고, 부족하다고만 느끼니

나를 탓하고, 채찍질만 했구나..

이젠 무뎌져서 희미해진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나를 많이 힘들게 한 시간들이구나'라는 생각에 

과거의 내가 짠하게 느껴졌다.


기쁠 때보단 슬프고 힘들 때 다이어리를 더 찾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더 많은 것 이겠지만,

예쁜 나이였던 그때 이런 생각들만 기록하게 해서 

나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더 미안한 것은 그때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현재의 내가 바라본 과거의 나의 기록이

나를 위한 생각의 시간을 가지게 했다.


다이어리는 현재의 나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래의 나를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힘들었다' 보다 '열심히 살았다'

'슬프다' 보다 '행복했다'

'버텼다' 보단 '이겨냈다'

감정들 뿐만 아니라, 좋은 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까지 기록하며

'지금의 내가 있기에 미래의 내가 된 것이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 졌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기록한 다이어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다이어리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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