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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n 05. 2022

할머니의 걱정

감옥

고모는 코로나에 걸리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폐 손상으로 이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헐떡이신다고 했다. 조카의 이야기에 따르면 의사는 길어야 몇개월이라고 했다. 조카는 근 몇달간 병원비에 매일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간병인 비용으로 재정이 파탄난 상태다. 어머니는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고 하셨다. 휴일 하루를 잡으라고 말씀드렸고 운전은 내가 하겠다고 했다.


너도 갈려고?”


귀하게 자란 장손인 나는 인간관계에 가끔 무심하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고갈당하는 내향적인 스타일 때문일까? 특정 기간 이상 관계가 멀어지면 활시위를 놓듯 놓아버리기도 한다. 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면회는 3시간에 1회 10분으로 한정되어있었다. 할머니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아이고, 진일아. 그래도 내가 죽기전에 널 본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 인간은 자신의 임종을 예언할 수 있다고 했다. 손을 잡아드렸다. 거만한 손자는 스킨십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명절에 가면 현관문을 들어서기 전에 포옹 한 번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같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5분이 지나자 간호사 분이 오셔서 밖에 계신 분이 고모라고 하시는데 자기도 면회해야 하니 나보고 나오라고 말을 전해주셨다. 육아 전담을 아내에게 맡기고 청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그 긴 시간을 겨우 10분으로 보상 받는데, 그 중 5분을 빼달라니 조금 억울했다. 그럼에도 혹시 중요한 일이라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를 비켜드렸다.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이었다. 돌아가신 뒤에는 고모를 참 많이 원망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가 더 일찍 혹은 더 자주 갔으면 되었을 일이다. 게으름인지 본질적 대인관계에 대한 거부감인지 그 밀쳐냄이 만들어낸 애석함이고 후회였다.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그래서 이번에 고모를 뵈러 가는 길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혼자 문경까지 운전해가시면 멀게 느껴지실테고, 나도 고모를 뵈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너의 할머니는 임종 직전에도  걱정을 하더라. ‘진일이 추우니 안방에 전기 장판 켜줘라.’ 돌아가시기  정신이 없으신데도   하시더라.”


잠시 머리에는 정전이 왔다. 그리곤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잊고 있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련거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확히는 정신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실 그 시간 이후로는 내가 무슨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은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에 계속 갇혀지냈다. 오늘로 4일째다. 아무런 글도 생각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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