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할 사람 고르기
알죠. 혼자보다 함께하면 더 수월하다는 거. 다양한 생각이 모이고 의견이 펼쳐집니다. 여러 사람의 힘으로 지식과 경험의 케파가 커지니 시뮬레이션의 폭도 커지고요. 만약 내가 꽉 막혀있을 때도 주변의 힘으로 어떻게든 나아갑니다. 전체의 힘이 있기에 어서 정신 차리고 다시 원위치로 합류해요.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배에 탔기 때문이지요. 큰 그림을 보며 비전을 세우고 전체적인 설계하는 리더가 있고, 목표에 맞게 진두지휘하는 행동대장이 좌우에 있고, 일의 효율을 위해 역할분담을 하여 착착 헤쳐나갑니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고, 위에서 끌어올리고 아래에서 밀어 올리며 영차영차 힘을 내어 속도를 높여갑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게 이런 말이죠? 그런데요, 무리에서는 협력의 기류에 현명하게 탑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용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습니다. 직장 내 불만은 이런 에너지의 쓰임과 이해관계의 문제에서 발생해요. 직장뿐이겠어요? 사람이 둘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특히 이익 관계라면 늘 이런 종류의 신경전과 갈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만저만 하여 팀 프로젝트로 일하길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이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요.
뛰어난 상사 밑에서 프로젝트가 어떻게 성사되는지 전 과정을 지켜보며 배웠던 때가 있습니다. 0에서부터 시작한 일들이 큰 기대 속에 시작하고 잘 풀리다가도 안 풀리면 방향을 다시 설정하기도 하고요. 어떻게든 끝까지 마무리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경험을 쌓은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니 삶의 멋진 페이지를 차곡차곡 지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체의 힘을 믿지만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으니 오롯이 혼자 책임을 다 져야 하지만요, 나 자신을 중심으로 원하는 일과 원하지 않는 일을 구분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완급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메리트를 느껴요. 나 하나만 챙기고 나머지는 여유로웠던. 어쩌면 여유시간조차 사치라 느껴 더 일을 퍼부었던 시기를 지나 돌봐야 할 아이가 생긴 게 변화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나에만 몰두할 수 없는 입장이 되니 그렇지 않은 팀원에게 미안한 일이 자꾸 생기며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도 한몫했어요.
미안하면 미안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인데 이게 더 발목을 잡더라고요. 일에 치우치다 보면 빨랫감은 쌓이고 냉장고는 썩어 가고 애들은 방치되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 패턴을 몇 차례 하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이 왔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엄마가 우선순위에서 자식을 저만치 뒤로 하겠어요. 워낙 멀티플레이를 해왔더라도 일의 크기와 중요도가 달라지다 보니 내가 커버 가능한 만큼만 내 삶에 들여놓게 되더라고요. 몽글몽글 일었던 꿈의 거품 빼기, 욕심을 거둬내는 작업을 수차례 합니다. 함께 일할 사람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과 호흡을 맞추니 격려와 응원이 따라붙더군요. 적당히 예의 차리며 뒷말 나올 관계는 멀리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갈 사람을 알아보는 때도 시기적절하게 오더라고요.
지향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논어ㆍ위령공
자력이 있는 사람과 꿈을 나누면 추진력이 붙어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처럼,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과도 같습니다. 조건은 각자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뜻이 일치해야 하며, 자신과 일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면 휘둘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힘의 균형이 깨지거든요. 그리고 뜻을 모아도 될까 말까인데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각자의 길은 다르더라도 길을 걸어 나아가는 방법과 가치관이 같은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협력은 배려도 중요하지만 뜻을 모아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공자는 도가 같지 않은 이상 함께하지 말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충고를 날립니다.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을 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것이 아니다. —맹자ㆍ이루상
공자의 뜻을 이은 맹자는 더 구체적으로 얘기합니다. 자포자기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며, 일도 같이하지 말라고요. 맹자가 말하는 자포자기는 단순히 하다가 그만두는 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일은 하다가 방향을 틀 수도 있고 지금 할 일은 아니라 여겨 미룰 수도 있지요. 변화를 도모하는 거지 자기 스스로를 놔버리며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는 게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이보다 더 절망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누구나 삶에서 긍정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싶어 합니다. 조용한 사람이든 활달한 사람이든 자기 내면에서 차오르는 긍정 파워를 기르려고 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살맛 나니까, 우울하지 않으니까, 그래야 행복하니까요. 곁에 있는 사람끼리 닮아간다고 하죠? 그래서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도 합니다. 가족 간에 닮아가고 친구끼리 닮아가요. 어떤 가족을 보면 말투와 표정, 심지어 걸음걸이도 똑같습니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기운에 오르고, 침울하고 부정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같이 다운되기 일쑤죠. 그럼 우리는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할까요?
자공이 친구에 관하여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심으로 일러주어 잘 인도하되 안 되겠으면 그만두어야지 이 일로 인하여 스스로 욕을 당하지 말아라. —논어ㆍ안연
친구끼리 조언하다가 사이가 멀어진 적 있나요? ‘앗 뜨거!’하고 한 발짝 물러선 경험이요. 소중한 존재라 여겨 충언했지만 해피엔딩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조언을 해야 할까요?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무엇을 위한 일인지 경계가 흐릿해질 즈음이면 멈춰서야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어요. 곁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말이죠. 내 마음 바꾸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남을 바꾸겠어요? 그래서 사람을 사귈 때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인정하고 넘어가라고 하잖아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도 하고요. 자기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을 쥐락펴락하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서, 각자를 존중하는 것은 결국 나와 상대방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 일이든 사람이든 충심을 다했어도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면 물러남이 현명한 처세에요. 한두 발짝 물러나 보면 보이지 않던 그림이 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