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도 중독이 된다면(1/2)

by Taylogue

요즘 내 일과는 거의 고정적이다.


평일 오전 9시쯤 일어나 10시까지 출근을 한다. 아침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아 아침은 거른다.

출근 준비를 할 때는 반드시 영어나 일본어로 된 컨텐츠를 틀어둔다.

이제는 꼬박꼬박 듣지 않아도 언제는 꺼내어 쓸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단단히 자리잡은 언어들이지만,

저 두 언어만큼은 필요한 순간에 활성화하는 데에 단 1분도 들이고 싶지 않아 늘 가까이한다.


일터까지는 운동 삼아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20분이 조금 안 되게 걸린다.

12시쯤 첫끼로 단백질바를 먹고 5시까지 근무한 후,

뒷정리를 하고 다시 도보로 귀가해 간단히 씻으면 대략 6시.


저녁을 후다닥 먹고 30분 정도 소화를 시킨 뒤, 6시 50분까지 필라테스 센터에 도착해 몸을 푼다.

겨울 시즌에는 아침이 아닌 저녁 수업을 듣기 때문에 워밍업을 하지 않아도 몸이 거의 풀려 있는 상태지만

종일 의자에 앉아 있기 때문에 여전히 뻣뻣한 구석이 있다.


7시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8시가 아주 조금 넘는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서 다시 책상에 앉으면 어느새 9시.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날 일정과 이후 계획들을 점검한 후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고 나면 12시.

일이 남아 있으면 일을 하고, 다음날 스터디가 있으면 스터디 준비를 한다.

둘 다 없는 경우에는 공부를 하거나 내가 쓸 플래너를 구상한다.


그렇게 빠르면 새벽 2시, 늦는 날은 3시를 넘겨 잠자리에 든다.

눈을 뜨면 다시 오전 9시.


매주 목요일 저녁 6시-10시에는 영어 수업 겸 스터디가 있다.

퇴근하자마자 30분정도 걸어 스터디 장소로 이동하고, 저녁은 간단한 베이커리로 해결한다.

10시에 끝나 집에 다시 걸어오면 10시 30분. 씻고 나오면 11시가 넘는데, 이때부터 자정까지 다시 글을 쓴다.

일과 공부는 12시 이후.



일상에 일정한 루틴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하루는,

오늘은 뭘 해야 하지, 내일은 뭘 하기로 했더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플래너를 펼쳐가며 궁리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내가 언제, 어떤 종류의 활동에, 얼마만큼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생각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우지 못 했고, 기껏 세운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번번이 힘이 빠졌다.


계획해두었던 수많은 일들을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내일로, 또 모레로 옮겨적는 것만이 내가 지키던 유일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내가 손에 움켜쥐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호호 불며 식히고 있었던 시간 속으로

'야 그냥 해'라는 깡패가 걸어 들어 들어오자, 모든 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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