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건을 집에 들일 자격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 사이의 그 어딘가

by Taylogue

지난 2022년 말, 약 7년 만에 이사를 했다.


손바닥만 한 원룸에서 혼자 1년을 지내도 짐이 증식하기 마련인데,

7년을 세 식구가 이동하는 일 없이 쌓아두고만 지낸 짐의 스케일이란 미리 받아둔 견적을 가뿐하게 초과하는 수준이라 이사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집에 큰 가구가 별로 없고, 최대한 털고 가겠다며 미리 방문수거를 하는 재활용 센터에 연락해 한 짐을 버렸으며,

오래된 옷가지며 이불, 먼지만 쌓여가던 학창 시절 참고서들까지 몽땅 정리하고 난 뒤였음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새로운 보금자리에 고심해 남겨온 짐을 풀어놓던 날,

층층이 쌓인 박스들을 보며, 어떻게 그 작은 방에 이렇게나 많은 짐이 다 들어가 있었나 감탄 아닌 감탄을 하다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몇 년 간 쓰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는 물건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사두고 읽지 않아 책장이 변색되고 만 (그러나 펴보지도 않은 새것인) 책들만 따져도 일단 몇백은 깔아 두고 시작하게 되는데, 거기에,


묘하게 손이 안 가 마찬가지로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

신지 않는 신발, 들지 않는 가방, 벨트, 용도 모를 장식과 키링,

1+1 혹은 1+2 라기에 사장님이 미치신 줄 알고 (사실 미친 건 나였다) 대량구매한 여분의 생필품,

각종 굿즈에 텀블러 퍼레이드도 모자라 추억이 깃들었다는 이유로 여러 번 거처를 옳기면서도 꿋꿋하게 짊어지고 다닌 구 시대의 유물들까지.


지난 12월 말 열흘간 겨울여행을 가면서 쌌던 짐이 패딩을 포함하고도 24인치 캐리어에 아주 여유롭게 들어갔던 것을 고려하면, 막상 내가 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은 박스 두어 개로 충분히 다 담을 수 있는 양일 거다.


그렇다면 과연 나머지 약 삼만구천팔백삼십 개 정도(체감상)의 물건들은 다 무엇이냐는 말이다...


부산행 이래 최악의 좀비사태가 발생해 갑자기 집안에 갇히게 되더라도 한동안 보급이 필요 없을 만큼의 물건(그 와중에 먹을 것은 쌓아두지 않아서 금방 굶어 죽을 것 같기는 하다)을 당연하게 쌓아두고 사는 것.


이게 정상일 리가 없다.




잉여의 물건은 번뇌를 일으킨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공간을 바라보다가, 물건이 쌓인 공간으로 시선을 옮겨 보면

물건이 일으키는 번뇌라는 게 무엇인지 아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또한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하는 돈의 가치에는 돈이 쓰이는 시점도 포함된다.

약 6개월 후에나 필요할 물건을 10% 더 할인받자고 지금 구매하는 것은, 향후 6개월간의 유동성을 당겨다 쓰는 행위임을 인지해야 한다.

6개월 후에 제값을 주고 사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의미다.

(별안간 정말 사장님이 미치셔서 6개월쯤 후에는 더 큰 할인행사를 하고 있을 수도...)


물건을 사두고 쓰지 않는 것은 더 질이 나쁘다.

돈은 돈대로 당겨 쓰고, 번뇌는 번뇌대로 일으키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돈을 먹는 게 낫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이 부동산 1평의 가치를 하는 물건인지 고민해 보고 질러라.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들은 말인데,

더 이상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결심하고도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또 그것대로 부담스럽다 느끼던 나에게 이 조언만큼은 너무나 명쾌하고 합리적으로 들렸다.


물건을 사면 집에 두어야 하고, 그렇게 집에 물건이 쌓이게 되면 그 물건 때문에 점점 더 큰 공간으로 떠나야 한다.

물건으로 인한, 일종의 (생활/재정적)'책임'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해 넓은 공간을 찾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내 '물건'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해 주인인 내가 계속 무리를 (소처럼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내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만으로도 가진 공간이 꽉 차 더 큰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때에도 답은 간단하다.

내가 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된다.



이사를 온 이후로 나는 물건을 들이는 일을 점차 줄이기 시작했고(부동산 1평 가격을 떠올리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대청소를 명목으로 '안 쓰는 물건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재활용 센터나 헌 옷 수거 업체에 연락해 입지 않는 옷과 잡화들을 떠나보냈고, 손이 가지 않는 물건과 책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불필요하게 쌓아두던 '여분'들까지 열심히 써 해치우며 일 년을 보내고 나니 나도 모르던 사이에 증식했던 내 짐들이 한눈에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줄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뿌듯하다.


3개월 뒤, 나는 다시 이사를 한다.

내 짐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라, 온전히 내게 딸린 물건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연 이번에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물건들로만 새 공간을 꾸릴 수 있을지,

다시 재활용 센터를 불러야만 할지,

혹은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내게 '새 물건을 들일 수 있는 자격'이 생겼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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