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잔인하다. 헌 것을 버리라 하니, 그 잔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화장하는 일상적인 행위를 제외하고, 기존의 헌 인생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로운 길을 걷는다.
‘모름’이 많은 사람은 용감하기에, 나는 겁 없는 단순함으로 힘차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겁 없는 용기로 시작했던 새로움은 이제 헌 것이 되어버렸고, 나는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매너리즘(Mannerism)이란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이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독창성과 신선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현상 유지의 경향이나 자세를 가리켜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이 어려운 시험 앞에서, 나는 고민에 빠진다. 현실에 대한 만족인지, 단순한 자기위안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 구별은 나를 ‘여기’라는 시간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저기’를 향해 다시 뛰도록 만들 것인지 결정짓는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던 우화다. 식량인 치즈가 서서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쥐들은 과감히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아 나서지만, 인간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안주하다가 결국 창고가 텅 빈 후에야 허겁지겁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선다.
2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이 책을 버스 안에서 읽으며 나는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별똥별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한 깨달음이었다.
‘이런, 저렇게 멍청할 수가. 왜 미련하게 가만히 있는 거야? 누가 봐도 답은 하나인데.’
그러나 나는 게으르고 안일함에 빠져 있던 난쟁이 ‘햄’과 ‘허’와 다를 바 없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다락에 처박아 두었던 운동화를 꺼내 신발 끈을 동여맸다. 하지만 그 열정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다시 풀어지고 있다.
이제 나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를 떠올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나를 모른 척할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로 유명해졌다. 베드로를 볼 때마다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노력하지 않는 자기 과신은 오만에 불과하며, 지켜지지 않는 자신감은 언제든 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수 있는 허상이다. 나는 이런 가짜 자신감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샘을 낸다. 질투는 내 귀와 눈을 멀게 하고, 앞서 나아가는 이들을 보고 배우기보다 시기하고 질투하기에 급급하다. 그런 모습이 한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진 내게 이 ‘샘’이라는 감정까지 더해지니,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 만족하며 감사하지 못할 거라면 깨어나야 한다. 예수님을 부인한 후 다시 고기 잡는 일을 하며 좌절했을 베드로처럼, 나도 현실에 안주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할 수도 있다. 나는 베드로처럼 강한 의지도 없고 결단력도 부족하다. 그가 실패를 계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면, 나는 그대로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넘어지기 직전의 순간에 깨어나야 한다.
다행히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나에게 강한 자극이 된다. 그들의 찬양과 기도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풀어진 신발 끈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들의 찬양이 하늘에 닿는 순간, 나는 천국 문턱에서 풍선처럼 터져 세상으로 떨어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나에게 깨어나라는 강력한 도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좋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깨어 있기 위해 발버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은 여러 겹의 시험을 통과해야 극복할 수 있는 어려운 과정이다. 먼저,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허상의 행복을 깨부숴야 한다.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징그러워 보이는 애벌레가 수차례의 변태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 매너리즘이라는 시험을 통과한다면 나는 더 높은 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