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외래가 응급실?
사지 멀쩡한 채로 응급실에 가다
절대로 지나갈 것 같지 않던 2023년이 저물고 2024년이 되었다. 2023년을 웃으며 보내 주겠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
새해가 되면 무엇이든 간에 달라질 거라는 작은 희망은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우울이라는 파도 속 무기력이 한 시간 단위로 밀려와 나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새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새해가 2주 정도 지난 주말, 늘 하던 대로 도서관에 갔으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공부는 물론이고 평소 즐기던 독서, 늘 맛있게 먹던 음식 또한 먹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먹은 점심은 금방 게워 내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병은 어느덧 생각과 감정을 넘어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겨우 열람실을 빠져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이후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으며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나 너무 우울해요. 도와주세요. 얼굴을 마주하고 하기 힘들던 대화도 전화로 하니 비교적 쉬웠다. 내친김에 모두 말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고 싶다고. 나 지금 좀 많이 힘들다고. 간단하게 시작한 통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전화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엄마는 내가 스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을 아주 놀라워하셨다. 그리고 꺼내면 안 될 말을 꺼내듯이 매우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런 말 하면 네가 놀랄 수도 있겠는데, 음...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니?
-네.
-일주일에... 대략 몇 번 정도?
-매일이요.
-......?!
-......
-하루에 어느 정도 그... 런 생각을... 하니?
-... 계속이요.
-어... 혹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본 적도 있니?
-네.
망설임 없는 나의 대답에 엄마는 눈에 띄게 당황하셨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털어놓으며 몇 시간 동안 울어서 그런지, 심각한 와중에도 졸음은 찾아왔다.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내일 마저 이야기하기로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물과 아픔 위로 피로와 졸음이 얇게 덮이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잠이 나를 촘촘히 에워쌌다.
다음날, 그다음 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진료를 보는 병원이 없어 접수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혼자 두는 것이 불안했는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하다 보니,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병원이 문을 열 시간이 되자 엄마는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대학병원들은 이미 대기환자가 꽉 차 있어서 신규 환자가 진료를 보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린다고 했다. 어떤 곳은 소아청소년 전문 의사가 출산휴가를 사용해 1년이 넘는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가장 빠른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집에서 자가용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2주 후 초진이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는 가장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그 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많이 힘이 빠졌다. 진료를 보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가장 빠른 진료가 2주 후라니.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담해 내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눕는 나를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략 한 시간 정도 후에 엄마가 아빠를 부르고 나를 불렀다.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다며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자고 했다. 병원에서도 많이 안 좋다 싶으면 바로 응급실에 오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처음엔 나와 아빠 모두 반대했다. 아빠는 2주 후에 예약을 잡았는데 왜 지금 가야 하냐고 되물었고 나는 멀쩡한 채로 응급실에 가면 받아 주지 않을 거라며 거부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잠시 동안 엄마와 이야기를 한 아빠가 나를 불러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반쯤 자포자기하기도 했고, 너무너무 힘들기도 해서 그러겠다고 말하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채비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 티셔츠 한 장 바지 하나를 걸치고 외투 하나를 입은 뒤 휴대전화 하나만 달랑 들고 자동차 뒷좌석에 탄 게 전부였다.
눈을 감아도 끊임없이 내게 꽂히는 초조한 시선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번 가 본 길이 그날따라 몇 배는 길게 느껴졌다. 몇 년은 흐른 것 같은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빨간 간판에 희고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는 글자. 누가 봐도 응급실임에 틀림없었다. 엄마는 내 손을 놓칠세라 꼭 쥐고 주저하지 않고 건물로 들어갔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 아래로 반투명 유리문이 스르륵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