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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Dec 29. 2024

3.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다

응급실에서 폐쇄병동으로

문이 열리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이 여기 왜 왔는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들이었다. 한 남자가 엄마에게 물었다.

-애기 뭐 때문에 왔어요?

고등학생이 애기라니. 그 와중에도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 정신과 진료요.

이제야 뭔가 좀 알겠다는 듯이 남자는 엄마를 접수창구로 안내하고 나를 응급실 안으로 데리고 갔다. 또 하나의 불투명 유리문 틈 사이로 엄마의 흔들리는 눈빛이 얼핏 보이다 닫히는 문에 가려졌다.

두 번째 문 뒤는 진짜 병원이었다. 간호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간단한 검사기기가 갖추어져 있었다.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접수대 근처에 놓여 있었다. 한 여자 간호사가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체온을 재고, 혈압을 재고. 형식적인 검사를 하던 간호사가 내 손에 무언가 기기를 꽂고는 살짝 당황한 듯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기기는 심박수 및 산소포화도 측정기였다. 간호사는 당황해서 흰 가운을 입은 다른 남자를 불렀다. 가까이 온 남자에게 간호사가 기기의 화면을 보며 145-150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내게 지금 좀 불안하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심장이 빨리 뛰는지 물어보고는 손가락에 기기를 끼운 채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대충 어떤 이유로 여기 오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런 내용들이었다. 질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엄마가 보호자 카드를 목에 걸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나와 엄마는 안쪽으로 이동하라고 지시받았다. 커튼으로 구분된 맞은편에는 침대가 여럿 놓여 있었다. 흡사 매체에서 접하게 되는 응급실 느낌이었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었다.


사지 멀쩡한 상태로 응급실에서 환자가 된 나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환자가 몇 안 되어서 그런지 그 와중에도 각종 검사들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심전도 검사, 동맥 채혈, 엑스레이까지 후다닥 찍고 수액을 맞은 채로 응급실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액은 투명했으며, 어떤 성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안정제 같았다. 실제로도 1분에 150회에 달하던 심박수도 110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잠시 내 곁을 비운 상태였고, 한 간호사가 내 침대 주변으로 커튼을 쳐 주었다. 혼자 남게 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각형 무늬가 고르게 박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걸까.


한 남자 레지던트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길게 면담을 했다. 곧이어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 교수님이 내려오셨다. 소아청소년 전문 정신과 교수님이라고 하셨다. 레지던트는 교수님을 그렇게 어렵게 대하지는 않는 듯했다. 교수와 레지던트 관계라기보다는 선후배 관계가 더 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교수님은 레지던트에게 친절했다.


누가 물어보았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입원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러겠다고 했고, 아빠가 각종 서류를 챙겨 와서 입원 수속을 밟고, 당장 필요한 짐을 챙겨 오고, 엄마가 안내사항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나는 환자였고 아픈 사람이었다.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에 온 것은 아니었기에 수속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료진의 부름에 잠깐 커튼 밖에 나가 있던 엄마는 이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밖에선 말소리도 나지 않는데 이상하다. 는 생각이 들 때쯤 엄마가 들어왔다. 내게는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얼마나 우셨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엄마, 울어요?

엄마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왜 울어요?

-혼자 힘들었을 텐데, 힘든 거 몰라줘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엄마.

-... 응?

이 와중에도 엄마가 조금이나마 덜 슬퍼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도...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나 괜찮아요. 진짜로요.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엄마가 당장이라도 응급실에서 통곡을 할 것 같아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었다.


-내가 힘든 걸 몰라줘서 고마워요. 내가 아픈 만큼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어요.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고 내 감정에 공감한다고 했으면 내가 훨씬 더 슬프고 속상했을 거예요.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도와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겐 위안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나와 함께 아프지 않아서.


우여곡절 끝에 서류가 준비되고, 아빠가 입원 수속을 완료하고, 또 다른 의료진이 내게 휠체어에 앉으라고 한 뒤 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엄마가 왜 휠체어를 타고 가는지 묻자 원래 다 이렇게 들어오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정제를 맞아서 어지러울 수도 있고, 혹시나 병동에 들어가기 전 도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서 이런 방식을 도입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휠체어는 한 나무문 앞에 멈춰 섰다. 현대식 건물에서 나무문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 금속탐지기로 몸을 훑고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소지품 검사를 했다. 그다음 시키는 대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사복은 반납해야 한다고 해서 엄마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내 물품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나서야,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함과 동시에 나무문이 닫혔다. 굳게 닫힌 나무문을 몇 번이고 돌아보고서야 폐쇄병동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등 뒤의 육중한 나무문 이외에도 또 하나의 단단히 잠긴 유리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조무사 선생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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