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주 오랜 시간
어느 시점부터 우울이 시작되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저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내놓지 못한다. 우울은 불안으로, 무기력으로 계속해서 가면을 바꿔 끼는 감정이었고, 그 당시의 나는 매 순간 변하는 형체를 하나로 인식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나는 완벽한 어린이였다. 공부, 운동, 글쓰기.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배운 대로 해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매 학년 모범상을 받았으며, 학급 임원을 맡고 전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았다. 모둠별로 상식퀴즈 대회를 할 때면 다들 나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했고, 한 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독서 골든벨에서 한 해는 2등을, 그다음 해는 1등을 차지했다. 글씨체도 교과서 글씨를 꼭 닮은 반듯한 경필체라 어느 순간부터 포스터 등에 글씨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모두 내 몫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항상 칭찬만을 들어 왔던 것 같다.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착하다는 이유로. 어느새 나는 '재능이 많은 아이'에서 '뭐든 잘하는 아이'로, 그리고 '항상 완벽한 아이'로 불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아주 어릴 적부터 머리가 비상했다. 또래 아이들이 속아 넘어가는 유치원 선생님의 거짓말에 손을 들고 논리적으로 반박했고, 더 어릴 때는 규칙 찾기 등을 누나인 나보다 훨씬 빨리 배웠다. 나이보다 적어도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똑똑한 동생 덕에 내가 이룬 성취는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이기 일쑤였다.
엄마와 아빠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었다. 칭찬을 하면 내가 기존 상태에 머무르려고 하며 그 이상의 노력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유달리 영특한 동생에 비해 내 능력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치른 기말고사에서 국어 수학 통합 모두 100점을 받아 친구들이 올백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재미삼아 나간 학급 임원 선거에서 예상치 못하게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되었을 때, 어린이백일장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해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살폈다. 과연 내가 지금 이 칭찬들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부모님의 표정이 밝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마음 놓고 기뻐했다. 엄마 아빠의 미소는 동생이 아니라 내가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이 안 계시는 학교에서 칭찬을 듣게 되는 순간에는 맘껏 기뻐하지 못했다.
항상 칭찬만을 들었던 학교, 대부분의 잘못을 지적받는 장소인 집. 두 곳의 온도 차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집에서 학교로. 하루에 두 번씩 달라지는 주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청소년 시기로 접어들며 매 순간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초등 3학년. 처음으로 우울이란 감정을 인식한 해였다. 당시의 짜증이나 무기력한 상태를 나와 부모님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신체 변화가 빨랐기 때문에 이른 사춘기가 찾아왔거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때 나의 변화를 안일하게 여기지 말았어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지나 중학생이 된 나는 언젠가부터 24시간 우울을 품고 지냈다. 커다란 물통에 잉크 한 방울이 서서히 퍼지듯, 우울도 아주 천천히 나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미묘한 변화는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그 세력을 넓혀 갔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장 무서운 사실은 그 당시에는 그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거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2023년 3월 2일.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듯 사회적 '나'는 완벽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아는 친구가 거의 없는 학교에 배정받았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이미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자잘한 실패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결국 모범생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가 더욱 빛날수록 내 속의 무언가가 하나씩 무너져 갔다. 23년 상반기가 지나면서부터 충분히 기다란 줄이나 끈을 옷 더미 속에 숨겨 놓는 횟수가 점점 증가했고 긴소매 옷으로 가린 팔에는 붉고 평행한 선분이 생겼다 사라지고, 또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11월 말의 주말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공부를 하다 책상에서 내려와 잠깐 쉬고 있었다. 그때, 서서히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도 수 차례 경험해 본 느낌이었다. 감정의 스펙트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로,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인, 정돈되지 않은 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반복실행했던 상상들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방을 깨끗이 청소한 뒤 옷가지 틈에 감춰 두었던 털실 뭉치를 꺼내 둥근 고리를 만들었다. 매듭을 지은 뒤 얼굴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인 고리를 잠시 바라보다 손에 쥐고 의자 위로 올라섰다. 의자 위에서 바라보는 방은 어느 때보다도 낯설었다. 잠시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이자 의자도 함께 흔들렸다. 다리로부터 전해지는 떨림에 감정이 돌아왔고, 동시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의자에서 내려와 손에 꼭 쥐고 있던 고리를 가위로 조각조각 잘랐다. 털실이 잘게 잘려 먼지처럼 흩날렸다.
이제는 내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넋을 놓은 채 앉아 있던 나는 그날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2024년이 되어서도 이와 같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때는 꼭 도움을 청하자고. 나,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하고 소리 내어 도와달라고 말하자고.
그렇게 11월이 지나고, 12월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