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예약일과 시간이 긴가민가 확신이 서지 않아 병원에 전화해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 예약이 잡혀있었지 뭐예요. 그날 시간을 늦출 수 없냐고 하니, 오늘 오후에 오라고 하길래 부랴부랴 병조퇴를 달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저는 두 번째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방문일이 며칠 앞당겨져 신이 났어요. 이번에 병원을 가면 ADHD 약을 추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업 끝나는 시간도 깜빡한 채 엉뚱한 시간에 예약을 잡아 두고, 예약일도 정확히 기억 안 나 다시 전화를 해보는 꼴도 그렇거니와 얼마 전 보낸 공문에 대해서 교육청 소속 선생님이 제게 메일을 보냈는데 솔직히 충격을 조금 받았습니다. 첨부파일이 하나 빠졌으니 메일로 다시 보내달라면서, '다음부터는 공문을 잘 확인하고 빠진 것 없이 보내달라'는 잔소리까지 적혀있지 뭐예요.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메일을 받았는데 평생교육원 소속의 담당자로부터 '##서류가 빠졌으니 보내주시고, **서류는 원본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서류는 이제 필요 없는 줄 알고 이면지함에 넣어 버렸는데,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이면지함을 뒤져보니 그 서류들이 무사히 살아계신 것을 보고는 어찌나 신께 감사했는지요. 이런 일들이 아니더라도 도저히 임용 강의에 집중이 되질 않고, 책상 앞에 앉기도 힘들어서 강의를 잠시 중단해 둔 상태였어요. 교육대학원 리포트도 아직 제출하지 못한 상태고요.
저의 가장 큰 고질병은 "(교원) 임용(고시) 병"입니다. 조증 상태에서는 반드시 올해 안에 붙겠다는 장엄한 결심을 하고, 합격한 상상을 하며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고는 이내 며칠 안가 공부 하기가 싫어집니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도 머릿속에는 온통 딴생각뿐이고요. 그렇게 흐지부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스트레스만 받으며 살게 됩니다. 시험은 당연히 똑 떨어지고요. 나도 이해할 수 없고 남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짓을 이십 년 반복했으니 제가 얼마나 피폐 해졌겠습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ADHD 치료제(이하 콘서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몇해 전부터 해왔습니다.
사실 저는 콘서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우리 특수학급 학생 중 한 명이 먹는데요, 그 학생은 과잉행동이 심합니다. 학생의 부모님이 약을 잘 못 챙겨 주셔서 제가 아침마다 복약지도를 하고 있지요. 교실에 출근하면 저 멀리 교문쯤에서부터 쩌렁쩌렁 그 학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교실문이 열리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렁차게 외칩니다. 그 학생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움직이고 돌아다닙니다. 때로는 교실 바닥에 눕고 뒹굴기도 하지요. 그리고 배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약을 먹고 30분가량이 지나면 자신의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간식을 줘도 먹고 싶지 않다고 먹지 않아요. 약 먹기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다르며, 약을 먹은 후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편이지요.
물론 약효는 사람마다 다르고, 저는 과잉행동은 없기에 그 학생처럼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차에 따라 약이 전혀 효과 없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어요. 콘서타가 지난한 제 인생에 한 줄기 빛이자, 구원이기를. 멍하고 졸리고 뿌옇고 답답하기만 한 제 머릿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기를.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 더미들을 멈춰주기를.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뭐든지 적당히를 모르고 끝도 없이 돌진하는 제게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를.
오늘 아침. 드디어 콘서타 18mg을 삼켰습니다. 작은 살구색 알약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요. 알약을 삼키고 약 한 시간가량이 되었을 때 '이게 약기운이 퍼지는 건가?'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살짝 한기가 돌고 소름이 돋으며, 머릿속부터 뭔가가 싸하게 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세 시간가량 지났는데요, 아직 드라마틱한 효과는 잘 모르겠고 며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몸이 좀 무거운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과잉행동 있는 아이들에게는 좋을 수도 있겠네요.
두 번째 상담을 마치고 상담실을 나올 때 방학이 언제냐는 의사의 질문에 저는 "1월 10일이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의 방학일이 1월 6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약국에 있을 때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