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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12.

이번 겨울방학은 캄보디아 씨엠립.

by 방구석도인

러시아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내 나이는 37살이었다. 01학번인 내가 20대였을 때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여행이나 인도여행이 한창이었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선교 여행이라며 인도나 호주 등을 해마다 갈 정도로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20대를 보냈으면서도 나는 해외를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교회에서 단짝처럼 지내던 친구가 25살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이후로 방학 시즌이면 교사 친구들과 어울려 해외를 나갔다. 주변에 해외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결핍감은 깊어져 갔다.


내가 내향형 집순이긴 하지만 그래서 해외여행을 안 간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간 것이었다. 우리 집은 항상 돈이 없었다. IMF 전이나 후나 늘 돈이 없었고, 엄마는 늘 돈을 빌리러 다녔고,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였던 아빠는 늘 월급을 밀려 받거나 떼였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제주도 갈 형편도 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학원강사로 취업했는데 동네의 작은 학원이다 보니 월급은 박봉이었고 임용고시 준비를 병행하다 보니 큰 비용을 마련하여 여행을 간다는 생각조차 나는 감히 해보지 못했다. 나의 부모도 형제도 그렇게 살았기에 그게 당연한 줄만 알고 청춘을 보냈다. 해외 한 번 못 나가 봤다는 말을 부모한테 하면 늘 돌아오는 말은 "임용 합격하면 가라, 돈 모아놓고 나중에 가라"였다. 언제나 돈의 논리가 우선했다.


젊었을 때 여행 많이 다니라는 말을 나는 부모한테 들어본 적이 없다.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말을 나는 부모한테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돈 벌으라는 말과 돈을 모으라는 말만 듣고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 큰 비용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먹고 자고 관광하는 그런 삶은 내게 없을 줄 알았다. 일찍 임용고시에 붙은 교사 친구가 함께 여행 다니던 지인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자 내게 여행을 같아 가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37살에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캐리어를 샀고, 컵라면을 포개어 짐 꾸리는 법을 배웠다.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고 여행 내내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함을 배웠다. 해외에서 타인이 주는 음료를 함부로 받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고, 비행기의 실내는 늘 서늘하다는 걸 배웠다. 기내에서 컵라면(지금은 아니지만)과 맥주가 무한히 제공된다는 걸 알았고, 구글맵으로 길 찾는 법과 유심을 바꾸어 끼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지만 미꾸라지들이 한 두 마리 꼭 있다는 걸 배웠고 여행지에서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비행기 출발 시간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막연하게 30분 일찍 가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수십 만 원 하는 항공권과 수십 만 원 하는 여행 경비와 수십 만 원 하는 숙박비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지만, 그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을 경험들이었다. 그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었냐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분명 돈 몇 백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우리는 여행지로 그때의 시간들을 기억한다. 37살 여름방학에는 러시아에 갔었지, 38살 겨울 방학에는 태국을 갔었지, 39살 겨울 방학에는 베트남을 갔었지.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할 자유를 잃고 나니 여행이 내 인생에 얼마나 귀중한 가치였는지를 깨달았다.


늘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의 반복인데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은 수년이 지나도 그때의 감각과 감성이 그대로 기억에 남아있다. 설레기 쉽지 않은 중년의 나이에 소녀 같은 설렘을 느꼈던 순간들이니까. 여행지에서의 사진을 보면 마치 천국에 다녀온 일을 회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43살의 여름방학은 홀로 떠났던 일본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홀로 일본 가는 비행기에 오르며 함께 여행 다녔던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처음 해외 나갈 때 아무것도 몰라서 친구에게 모든 걸 맡기고 찔레 찔레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이젠 친구 없이 홀로 캐리어를 꾸리고, 일찍 공항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여유롭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유심대신 이심을 쓰고, 어플을 이용해 항공권이며 숙박, 투어를 척척 예약했다. 공항에서 42살에 아이를 낳고 육아에 한창인 친구에게 너 생각이 난다며 메시지를 보냈더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년 여름방학에는 꼭 같이 대만 가자면서.


44살의 겨울방학은 캄보디아로 기억될 것이다. 11월에 항공권과 숙박, 투어를 예약했고 환전까지 완료했다. 이제 13일이면 따뜻한 캄보디아로 떠날 것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내게 겨울이 참 춥다. 그때면 맨발에 샌들을 신고 원피스 한 장 걸친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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