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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11.

가지 말아야 하나?

by 방구석도인

캄보디아 여행 준비와 계획은 11월에 이미 끝나 있었지만 엄마한테 말한 건 어제였다.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했을 때, '나도 가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려는 비행기도 베트남의 저가 항공사 소속이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로 바꾸려고 검색도 해봤지만 운행하는 비행기가 없었다. 가뜩이나 혼자 해외 나가는 것에 대해 엄마는 걱정이 많은데(원래 엄마는 항상 걱정이 많다) 여객기 추락 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으니 엄마가 반대할까 봐 걱정됐다. 물론 엄마가 반대한다고 해서 안 갈 내가 아니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고 난 날 저녁,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가족한테 여행 간다고 말 안 하고 비행기 타면 사고 나도 가족들은 모르지 않겠냐'며 흥분했다. 아직 여행 계획을 말 안 했는데 알고 말하는 것처럼 어찌나 뜨끔하던지. 어제 말하니 엄마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할 수 없을뿐더러 그때가 언제인지도 알 수 없다. 미래를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한다 한들, 운명이 그 계획과 준비를 피해 가면 헛방이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두렵고 두렵다. 비행기 사고뿐 아니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납치, 강간, 소매치기, 약물, 폭행 등등. 해외에 나가면 말도 안 통하고 그 나라의 물정을 모르니 약자일 수밖에 없고 위험에 대처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두려워진다. 그렇게 두려운 것만 바라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자동차 사고가 두려워 출퇴근은 어찌할 것이며, 강도 들까 무서워 잠은 어찌 들 것이며, 불 날 까봐 무서워 가스레인지는 어찌 켤 것이며, 암 걸릴까 무서워 컵라면은 어찌 먹을 것인가.


인간의 위대함은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죽을 줄 알면서도 모두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허망한 줄 몰라서 그리 사는 것이 아니라 허망함을 극복하고 그리 사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허망함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꿈과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꿈을 이룰 수 있다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계획대로 1월 13일에 캄보디아로 갈 것이다. 이십 대 때, 어느 소설에서 "나무뿌리와 사원이 뒤엉켜 있다"는 글을 읽고는 늘 앙코르와트가 보고 싶었다. 앙코르와트를 보고, 사진을 찍고, 야시장도 가고, 골목의 이름 모를 카페도 가고, 밤에는 숙소에서 홀로 일기를 쓸 것이다.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이방인들 가득한 숙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국어를 들으며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매서운 1월의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홀로 뜨거운 태양을 마주할 것이다.


두렵지만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라고 원하던 삶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설사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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