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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캐나다에 가고 싶어요.

조증 삽화는 진행 중.

by 방구석도인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외국에 살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조기유학 붐이 시작될 때 반 아이들이 한 두 명 미국으로 캐나다로 영국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도, 십 대 때도, 이십 대 때도 막연하게 외국 나가 사는 것을 동경해 왔어요.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고요. 하지만 정말 막연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제 학부 전공은 국문학이고 국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국어, 논술 강사로 일했거든요. 해외에 나가려면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저의 학위와 자격과 경력이 해외에서는 무의미한 "국어국문학"이었으니까요. 영어를 못하는 건 물론이고요. 그래서 그 젊은 날, 워킹홀리데이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해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지점이에요. 젊음이 무기였는데 말이죠.


특수교육, 상담교육 석사를 하고 특수교사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나이는 점점 먹고, 어쨌거나 한국에서 쌓아놓은 게 더 많은 나이가 되었는데 갑자기 캐나다에 가고 싶어 졌습니다. 여행 말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 졌어요. 저는 늘 영어가 잘하고 싶었어요. 영어를 잘하면 전 세계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고, 어느 누구를 만나든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래서 영어권 나라에 살고 싶은데, ECE(캐나다 보육교사)로 취업과 영주권 따는 방법이 있다네요. "캐나다 보육교사"는 십 년 전부터 인터넷에 꾸준히 홍보되고 있는 문구였죠.


그리고 한국 특수교사 자격과 경력이 캐나다에서 전환이 가능하다는 글도 보았습니다. 저는 보육교사 자격도 있는데 이것도 캐나다 자격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네요. 그래서 어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캐나다 보육교사 자격 강의를 운영하는 교육원의 플래너와 상담까지 하게 되었어요. 제 자격으로는 ECE 2 레벨이 가능학고, 11과목 더 들으면 3 레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3 레벨이 시급이 더 높기에 충동적으로 강의 결제까지 했습니다.


국어 임용 준비하던 사람이 보육교사 자격증 따고, 특수교육 전공하고, 특수교사 하다가 갑자기 상담교사 되겠다며 대학원 다니고 임용까지 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상담교사를 너무 적게 뽑아 자신이 없어져 다시 특수 임용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임용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가 캐나다 보육교사 강의까지 결제한 거죠. 이러한 저의 행동이 조증 삽화 인지 저는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교사하던 사람이니 보육교사나 국어교사나 특수교사 상담교사까지는 왔다 갔다 할 수 있다지만, 이번 캐나다 보육교사 건은 제가 생각해 봐도 조증인가 싶습니다. 게다가 강의 결제까지 바로 해버리다니요.


어젯밤은 조울증 치료 시작하고 최초로(여행지에서의 음주 제외) 혼자 술까지 마셨습니다. 밤 9시에 치맥을 먹었지요. 우울증 약의 용량을 높여서일까요? 콘서타를 복용해서 일까요? 조울증 환자가 우울증 약이나 콘서타를 복용할 경우 조증이 올 가능성이 있다던데, 아무래도 조증 삽화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단 현재는 특수 임용을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임용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불합격할 경우, 정말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쳬계적으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캐나다 보육교사 자격은 갖추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의는 진행할 것입니다. 11과목 듣는데 백만 원 남짓의 돈이 드는데, 제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있어 무리한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임용고시에 합격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사고는 이리저리 비약적으로 튑니다. 충동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조증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았습니다.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고요. (많이 한 것과 잘한 것은 별개입니다만) 그러다 보니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지요.


저의 조증 삽화는 저를 어디로 데려다줄까요? 저는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조증의 회오리에 휘말려 이리저리 부유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일단 이번 여름방학 때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에 또 갑니다. 잘생긴 가이드 보러 가는 건 아닙니다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숙소를 예약해 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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