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조증이 왔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캄보디아에서, 저는 아주 오랜만에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한 행복감과 짜릿함을 맛보았습니다. 캄보디아의 새파란 하늘, 찜질방에 들어온 듯 따뜻한 날씨,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오래된 사원들, 크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맨발에 샌들을 신고 에스닉한 원피스 한 장 걸친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여행 기간 동안 저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과 나!"였습니다. 진심으로 세상도, 나도 한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캄보디아 청년의 허리를 붙잡고 탄, 시골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ATV가 너무 짜릿해서 즉흥적으로 세 번을 더 신청해서 탔습니다. 두 번째 탈 때는 구멍가게에 바이크를 세워 두고 가이드와 함께 캔맥주를 마셨지요. "One more."를 외쳐가며 네 캔을 마셨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가 불러 네 캔 밖에 마시지 못했어요. 네 번째 탈 때는 처음 본 한국 청년에게 먼저 말을 걸고, 맥주 마시자고 졸라서 가이드와 한국 청년과 함께 맥주를 마셨어요. 이 날이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는데요, 가이드와 함께 펍스트릿에서 맥주를 마시자고 했거든요. 그 자리에 한국 청년도 초대해서 함께 맥주 마시며 정말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로 들떠 있었어요. 끊임없이 웃고, 말을 했어요.
어느 날 밤은 저 혼자 펍스트릿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 혼자 맥주 마시던 백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더라고요. 그리고 좋은 술집으로 안내한다고 해서 함께 따라나섰어요. 자리를 두 번 옮겨 가며 칵테일과 위스키, 맥주 등을 마셨습니다. 이 날은 섞어 마신 탓인지 많이 취했어요. 나중엔 우리를 태워준 툭툭 기사까지 합류하고 결국 그 기사가 데려다줘서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아마 계산은 백인 할아버지가 했을 겁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속으로 '이래도 괜찮을까? 이러다 무슨 일 당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 행동이 제어가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이크 태워 준 캄보디아 청년과 23일에 함께한 한국어 가이드가 실은 잘생겼어요. 집라인 탈 때 보았던 가이드도 잘생겼고요. 어쩌면 제 눈에만 잘생긴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바이크 타는 내내, 함께 투어 하는 내내, 마치 데이트하는 것 같이 설레었답니다. 제 나이는 생각 안 하고 이 삼십 대 청년들을 보며 너무 설레고 즐거웠어요. 정말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숙소에서 잠들기 전 그들과의 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짓곤 했어요.
제가 조울증 환자인지 몰랐더라면, 그냥 성격이려니 했을 겁니다. 이 얘기를 지인한테 하니 저는 아직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모든 증상이 경조증이라는 걸요. 여행 기간 동안 콘서타( ADHD치료제)는 거의 먹지 않았고, 조울증 약도 두 번가량 빼먹었어요. 콘서타는 공부할 일이 없으니 일부러 안 먹었고, 조울증 약은 술을 많이 마신 날은 일부러 안 먹었습니다. 이렇게 약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술까지 마시니 경조증이 올 수밖에요.
오랜만에 즐겁고 설렜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병이라고 하네요. 너무 행복한 것도 병이라네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너무 불행해도 병이고, 너무 행복해도 병이라는 사실이요. 도대체 중간쯤은 어디일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조증과 울증 사이, 그 어딘가에 답이 있을까요? 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