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나 봅니다.
갑자기 "캐나다"에 꽂힌 저는 누가 조울증&ADHD 환자 아니랄까 봐 캐나다에 과몰입 중입니다. DSM(정신의학진단기준)에 따르면 조증 증상으로, "과장된 자존심 또는 과대성", "사고의 비약 또는 사고가 질주하는 듯한 주관적인 경험", "주관적으로 느끼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주의 산만",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 또는 정신운동 초조"가 있는데, 제가 지금 이 상태인 듯합니다. 조증 삽화 시기에는 과도한 계획을 수립하거나,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특별한 경험이나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능력에 넘치는 일을 시도한다고 합니다(서울아산병원 질병 백과).
지금 제가 딱 그렇습니다.
캐나다에서 교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도저히 머릿속에서 떨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현재 캐나다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는 분의 블로그를 통해 유료 상담을 받았습니다(비용 15만 원). 작년 말부터 캐나다에서는 이민자 축소 정책이 시행되어서 지금은 많이 어려워졌다고 하네요. ECE로 취업하여 워크퍼밋을 받는 길도 막혔다고 합니다. ECE는 시급이 낮아 대상이 안된다더군요. ECE로 워크퍼밋 가능한 것처럼 광고하는 이주 공사는 거의 사기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캐나다까지 갔는데 비자가 안 나와서 다시 한국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남의 돈과 인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사는 인간들일까요? 기가 찹니다.
제가 현재 캐나다의 워크퍼밋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캐나다의 공립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는 길 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석사 학위가 두 개인데 캐나다에서까지 또 석사학위를 해야 한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습니다. 공부하기 지지리도 싫어하는 ADHD 환자인데, 팔자에도 없는 석사 학위가 세 개나 되게 생겼습니다, 그려. 그래도 학비는 싼 편이고 기숙사가 제공된다고 하니, 이주공사에 수수료 내느니 이게 더 낫다고 합니다. 이주공사에 지불하는 돈은 사라지는 거지만 어쨌거나 석사학위는 제게 평생 남는 거니까요.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면 3년짜리 워크 퍼밋이 주어지고, 그 기간 동안 교사로 일하며 영주권 준비하면 된다고 합니다. 물론 대학원에 입학하려면 영어 점수도 갖추어야 하고요.
갈 길이 아주 멀게만 느껴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정년이 따로 없어서 원한다면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하니, 캐나다에서는 그리 늦은 출발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이게 제 조증으로 인한 일시적인 바람인지, 진짜 제가 원하는 건지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 저의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진작에 틀려 먹은 것 같습니다. 언제 붙을지 알 수 없는 임용고시에 매달리는 것도 지쳤습니다. 경직된 한국의 교직 사회에서 기간제 교사로 사는 것도 녹록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사와 학부모에게 철저한 을이 되어 할 말도 못 하고 사는 것도 참 진절머리 납니다. 물론 월급과 방학이 가장 큰 보상이지만, 마음 한 구석 상처가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친한 친구도 별로 없어 한국을 떠나는 것에 큰 미련이 없습니다.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겠지만, 어차피 형제들은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사니 그들에게는 그들이 꾸린 가족이 저보다 우선이겠지요. 어차피 많이 봐야 일 년에 열댓 번 정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제가 정규직이 아니기에 그다지 미련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막연한 꿈이었던 "외국 유학 생활"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캐나다 가서 영어로 공부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연애도 하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젊었던 십 대, 이십 대, 삼심 대 때는 유학 갈 수 있는 기반이 없어서 못 갔지만, 지금은 제가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충동적으로 "캐나다 가서 교사나 할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진지해졌습니다. 똑같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즐겨 보고 싶어 졌습니다. 어치피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그때그때 이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것 한 번 해봐도 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고민되는 이유는 어차피 캐나다 가서도 특수교사 할 거라면, 그냥 한국에서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서요. 한국에서 특수교사 하면, 자격증 변환하느라 수수료 500만 원을 낼 일도 없고(대행사 수수료 및 정부에 내는 비용) 다시 석사학위를 공부할 일도 없어 돈과 시간이 굳는데 말이죠. 그 돈과 시간 아껴서 차라리 방학 때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도 정규직 교사 자리 얻으려면 쉽지 않을 걸로 압니다. 캐나다에서도 안정적인 교사 직업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말이죠.
캐나다 영주권이 탐나기는 합니다. 영주권 얻으면 의료비 무상에 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안락사가 합법회 되었다고 하니, 제가 이 세상 떠나는 날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치매나 기타 중병에 걸려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전부 무료라고 하니 자식도 남편도 없는 제게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집값이나 물가가 살인적이라고는 하나, 그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니까요.
남들은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나이에, 인생을 확 뒤집어엎고 싶어 졌습니다. 모든 걸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졌습니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던 '아름다운 나의 공간에서 차 마시며 책 읽는' 소소한 즐거움 마저 버리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졌습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일상을 살고 싶어 졌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졌습니다.
대체 저는 무슨 바람이 분 걸까요? 아직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습니다.
미래의 저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려고 합니다.
저도 궁금해요, 저는 정말 캐나다로 떠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국에서 지금처럼 살아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