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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생.

공부도 못하는 게 공부하고 앉아있네.

by 방구석도인

자랑이라면 자랑인데, 나는 말과 글을 일찍 습득했다.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은 다섯 살부터인데, 그전에 나는 이미 한글과 덧셈 뺄셈을 마스터하였다. 다섯 살에 처음으로 유아원에 입학하였는데 너무 어려서 안 받아 주려 했지만 내가 한글과 숫자를 뗐다고 엄마가 말하자 나를 입학시켜 준 기억이 있다. 기억은 언어를 통해 저장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언어 이전의 삶은 기억에 없다. 내가 어떻게 스스로 한글을 떼었는지 그 방법은 나도 모른다. 다만 내 기억의 처음은 내가 작은 방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던 장면이다.


한글과 수를 빨리 뗐기에 저학년 때는 공부를 특별히 안 해도 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아이들도 한글을 떼니 나는 평범한 아이가 되었고, 공부하는 방법이라든가 학문의 즐거움을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공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가난한 집안의 둘째 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대학에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고를 가든, 전문대를 가든, 그저 빨리 취업해서 돈 버는 것만이 부모의 바람이었다.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에 공부를 정말로 못했는데, 여차저차해서 4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교직이수를 해서 국어교사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공부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도 못하는 게 공부만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국어 임용고시를 수없이 실패해도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렸으나 도저히 길이 안 보여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특수교육을 공부하게 된다. 이번엔 특수교사자격증을 받고 특수교사 임용고시에 매달려 보았으나 여기에도 길이 안 보여 다시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상담교육 공부를 하게 되었다. 올 3월이면 이제 4학기 차에 접어든다.


처음에는 공부로 길이 안 풀려 돌파구를 찾으려 혹은 생계수단을 찾으려 시작했던 다른 공부가 또 다른 공부의 발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마치 꼬리잡기 놀이라도 하듯, 이거다 싶어 잡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거다 싶어 잡으면 저것도 아닌. 이것 때문에 저것을 해보았으나 저것 때문에 다시 그것을 하게 되는. 오묘한 꼬리잡기 공부. 엄마는 나보고 이제 공부는 그만하라고 한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돈을 모으지 않고 자꾸 쓰는 것을 싫어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공부하는 것 자체가 지출이고 낭비인 셈이다. 틀린 시선은 아니다. 공부에 돈이 들어가는 건 맞으니까.


하지만 공부도 중독인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꾸 나의 부족한 점이 보이고 나의 부족한 점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공부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꾸 하고 싶은 게 생긴다. 이번엔 영어 공부가 하고 싶다. 내년쯤엔 방통대 영문과에 편입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어교원자격증에 관심이 생겨서 한국어 교육 석사 학위를 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후에는 코이카 봉사로 동남아 쪽에 나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 올해는 일단 특수교사 임용고시를 보기로 했으니 불가하겠지만, 내년에는 방통대 영문과와 경희사이버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를 동시에 입학하고 싶다. 방통대는 다른 학교와의 학업을 병행하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내게 있어 공부는 밥줄이었다. 국문학과를 전공하고 국어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약 9년간을 국어 논술 강사로 일했다.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기간제교사를 하고, 일반학급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수 있었던 것도 국어교사 자격증 덕분이었다. 충남은 초등교사와 특수교사가 부족할 때는 중등 교사를 채용한다. 특수교육을 공부한 이후에는 줄곧 특수학급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다. 벌써 8년 차이다. 그리고 공부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국어를 공부하며 아름다운 우리 글과 말을 통해 나의 세상은 숭고해지고 깊어졌다. 특수교육을 공부하며 세상의 다양성을 알았고, 정상과 평범의 틀이 깨어지며 나의 세상은 넓어졌다. 상담교육을 공부하며 세상엔 이해 못 할 사건이나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나의 세상은 전복되었다. 세상만사가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조울증과 ADHD로 인해 성실하게 학문에 파고드는 스타일은 되지 못한다. 그저 딱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딸만큼만 간신히 공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나를 성장시켰다.


공부를 못하지만 공부하고 싶다. 집중을 못하지만 공부하고 싶다. 학벌은 좋지 않지만 공부하고 싶다. 공부가 하기 싫은데 공부하고 싶다. 공부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것도 모자라 나를 키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다음의 나는 무슨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의 공부가 나의 길이 될 것이고 나의 삶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공부로 인해 나는 한층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단지 등록금 몇 천만 원이 아까워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나의 세상, 나의 행복, 나의 성장. 몇 천만 원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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