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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30. 2022

13.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1 (식민지와 백택)

하와이에서의 기록

불만 승객들의 에피소드도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손님들께 진심 어린 칭송도 수 없이 받아봤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불만을 받아 보았고, 그게 하필 나와 직원들이 어리숙하던 운항 초기에 집중되었다. 


부임 후 약 3개월이 지나서 아직 AOA Badge  발급전이었다. 사무실에서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 지점장이야? 당신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당장 한국으로 소환 될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뚜뚜뚜.. ‘엥 이거 무슨 소리지? 잘 못 걸려온 전화 아닐까.’ 다시 전화벨이 울리자 바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정말 이런 사람 아닌데 너무 화가 나서 당신에게 거니깐 이해하고 그냥 듣기만 하시오. 나를 이렇게 취급했으니 당신네 회사 가만두지 않을 거야!” 뚜뚜뚜..


“손님 어디 계세요? 제발 어디신대요? 제가 무슨 일이지 모르겠지만 가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찾아봐.” 뚜뚜뚜. 그런 전화를 네 번인가 받고, 당황해 하는 직원들을 독려해서 여기 저기 그 손님을 찾으러 다니게 했다. 드디어 면세지역에서 그 손님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Escort Badge(AOA Badge를 발급받은 직원이 인솔을 할 수 있는 임시 카드)를 달고 면세지역으로 들어갔다. 


얼핏 보아도 화가 난 얼굴을 한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같이 간 직원이 설명하려 들자 그 여직원의 팔꿈치 부분을 밀쳐내며 화를 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절대 미국에서 불만을 제기 하더라도 직원의 몸에 손을 대면 안된다. 불만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그 독수리 여권을 가진 직원이 당신을 미국 법원에 세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문학적 소송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평생 더 이상 미국 여행은 꿈도 꾸지 마시길.


역으로 화가 난 직원을 달래어 뒤로 물리고 내가 직접 응대를 시작했다. “손님 무슨 일이신가요? 제가 설명드릴 수 있으니 말씀이라도 해주십시오.” 신입이었던 조업 직원의 실수로 하이티어의 그 손님께 그만 라운지 위치를 제대로 설명 드리지 못했고, 그 분은 약 30여분간 공항 이곳 저곳을 헤매다가 한국 국적의 타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라운지 위치를 찾았으나 화가 이미 머리끝까지 난 상황에서 그 경쟁사 직원에게 부탁하여 우리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다 내 잘못이다. 직원들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 그러나 이미 화가 난 그 손님에게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출발시각이 다가오는 동안 호놀룰루공항의 면세지역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난 정말 큰소리의 욕을 먹었다. 


심지어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까지 들었다. 


몰랐다. 내가 친일파 후손인줄은..


기내까지 따라 들어가 캐빈매니저께 상황을 인계 드린 후, 항공기 문을 닫기 전까지 계속 사과 드리고 정성껏 응대를 하였다. 옆에 계신 부인도 그만하라고 말리고 본인도 이제 실컷 퍼부었다고 생각했는지 본인의 명함을 한 장 건네어 주며 건강히 잘 지내라는 덕담 아닌 덕담으로 혼자만의 마무리를 하였다. 


항공기 문을 닫고 나와 명함을 보니 모 유명대학의 교수님 이셨네요. 교수님.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소리지르지 마세요. 사이코패스 같아요.


그 이후로는 라운지 지도를 축소 복사하여 일일이 가위로 잘라서 수속 카운터에 비치한 후, 모든 라운지 손님께 사용 설명과 함께 배포해 드리는 방식으로 보완책을 마련하였으나, 라운지 위치 설명에 대한 트라우마는 귀임 시 까지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날은 정상적으로 수속을 진행하며 수하물 벨트에 짐들을 올리고 있었다. 


미국 공항은 한국의 최첨단 공항처험 카운터에 앉아 있는 수속 직원이 Bag Tag을 붙이고 페달을 밟아 메인 수하물 벨트로 가방이 넘어가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손님이 무게 측정을 위해 저울에 올린 짐을 수속직원이나 조업사 직원이 바닥에 내려놓고 육안 검사 후 태깅을 한 후 다시 전문 조업사 직원이 수하물 벨트에 올리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수속직원들의 건강보험이 저울에서 짐을 내려놓을 때까지만 적용된다는 말을 들었고, 공항내 타 항공사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이내 당연한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사설이 길었다. 수속 직원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 일행을 수속하며 가방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약간은 낡아 보이는 가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지점장이 뒷짐지고 서 있거나 대기라인에서 손님을 카운터로 안내하는 것만 담당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기에 난 늘 카운터 뒤에 서서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을 간파하여 외국인 조업 직원을 대신해 한국어로 응대드리기도 하고 가방도 옮겨주며 수속을 독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 날도 어김없이 그 눈에 띄는 가방을 뒤로 옮기며 자세히 보니 아주 오래 되어 보이는 일본계 항공사의 Bag Tag이 붙어 있는게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발동하여 이리 저리 확인 후 손님께 오래된 택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와 되게 신기하네. 이 택 아마 30년은 된 것 같어.“ 


그리고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 손님 일행은 카운터를 떠났다. 떠난지 약 5분이나 되었을까? 30대 중반의 여자 손님께서 카운터로 다시 다가오시더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생각해 보니 열 받네. 내가 정말 30년 동안 한번도 해외여행 못해본 사람으로 보여요?” 


너무 황당했고 당황해서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손님 제가 그런 의미로 이야기를 한 건 아니구요. 정말 너무 오래된 택이라 현재의 저희 회사 수하물 택과 비교도 할 겸 떼서 자세히 보았던 거에요. 그리고 어차피 구형 택은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하물 분류가 명확히 될 수 있어요.”


막무가내였다. 카운터 앞에서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직원들은 경찰을 부르려 했고 난 손짓으로 막았다. 비즈니스 카운터에서 아기를 안고 수속을 진행하시던 다른 손님 일행이 역정을 내며 그만 소리지르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고, 그 손님과 불만 손님의 말다툼까지 벌어질 양상으로 전개가 되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종료해야 할 것 같았다. 


목에 건 나의 사원증을 한 손으로 쥐어 들고 사진을 찍은 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내던져버리는 그 분에게 “죄송하다. 혼잣말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같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미 오해로 흥분해 있는 손님 앞에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진정 어린 사과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면세지역에서 만난 그 손님은 일행들의 조언 등을 통해 상당히 누그러 들어 있었다. 옆에 있던 한 일행 분께서 “이 친구 원래 다혈질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께요” 라고 농담을 건네 주시는 바람에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그 후 난 다시는 손님 앞에서 혼잣말이라도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알로하, 마할로만 반복하거나 유쾌해 보이는 손님들에게만 가벼운 농담으로 여행의 재미를 더 느끼실 수 있게 서비스 체질을 변경하였다. 


그래도 그날은 좀 억울하긴 했다.. 그런 의미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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