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도 아니고 능력이 없지도 않지만 지 살자고 날 괴롭히는 것인가
수림이 회사 생활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장이라는 별명을 지은 것이다.
“상대편 팀長”의 약자: 상장.
이럴 때의 상대편은 같은 팀이 아님을 나타내기도 하고
적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를 응원할 때 상대편과의 사이를 생각해 보면
그건 꽤 명확한 적의에 가까운 감정이다.
처음에 상장이라는 별명에는 약자의 기능이 더 강했다. (상대편 팀장이라는)
우리가 1팀이라면 그저 상대인 2팀의 팀장 정도였다.
그런데 상장은 정말이지 점점 상대편이 되어 갔다.
우리 팀이 아닌 상대 팀. 상대 편.
우리 편과 다른 결과를 응원하는 사람.
회의실에서 맞은편에 앉아서 왠지 맞은편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상장이라는 무해했던 별명에 풍자가 붙기 시작했다.
상장의 다양한 해석을 낳은 인물은 수림이 아니라 상장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는 바이다)
풍자를 주문하니 세트 메뉴인 해학도 따라왔다.
상대편의 장(長)이자
아부가 아주 상장(賞狀) 감인 사람.
동네 구멍가게가 갑자기 상장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는 법.
그런데도 상장은 다음 달에 상장(上場)할 주식처럼 기고만장한 사람이다.
역시나 그에게는 상장이라는 별명이 찰떡이자 꿀떡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상장을 받을 만한 그의 아부 실력을 몇 건만 떠올려 볼까?
상장은 대표 앞에서 절대
자기를 앞세우지 않았다.
“제가 보기엔요” 대신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대표님 말씀을 기준으로 보면요.”
기준은 언제나 대표였다.
(그런 상장이 대표님에겐 점점 더 옳다)
자기 의견은 그 기준 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제야 자기 생각도 맞는 생각이 되었다.
상장은 회의에서 역시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다.
누군가 반대 의견을 내면 그걸 꺾지 않았다.
대신 살짝 옆으로 비트는 것으로 시동을 건다.
“그 방향도 의미는 있는데요,
다만 대표님이 우려하신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합니다.”
(이러니 대표님께 상장을 받을 수밖에! 아 또 욕설이 나오려고 한다. 아비투스 아비투스!!)
그 말 한마디면 방향은 자연스럽게 틀어졌다.
아무도 진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승자는 늘 상장이 속한 팀이었다.
이런 순간마다 수림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극대노까지는 아니고, 증오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어넘길 수도 없는.
딱 그 정도의 감정. 적의에 가까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진 않지만
하루에 한두 번쯤 이를 악물게 만드는 순간이 있고 그 뒤엔 사람이 있다.
상대편 팀장
아부가 상장받을 수준인
상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수림은 욕 대신 인내를 배웠고,
짜증 대신 사회적 자본인 아비투스를 익히며 자기 수양을 하게 됐다.
아, 이 사람 때문에 오늘도 마음 수련 한 판이구나,
내 심호흡과 명상의 근원, 상장!
(어쩔 땐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하늘이 보내 준 사람 같아서 아주 쬐끔이지만 고맙기까지 하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관리 포인트가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누구의 잘못인지 아무도 모르게 상황은 정리되었고,
대표는 ‘관리’를 해낸 사람을 보았다.
수림이 이런저런 고민과 스트레스에 빠져 있을 때,
상장은 어느새 고나리질의 장으로 성장 중이었다.
실무를 뺏지는 않았고, 성과를 독차지하지도 않는 척했다.
다만 성과가 보고될 때 과오는 늘 흐릿해졌고,
그 흐릿한 자리에 관리자의 언어가 들어갔다.
대표는 그 언어를 신뢰했다.
날카롭지 않고,
과격하지 않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말.
대표가 원하는 건
조용하고 안정적인 해결인 경우가 많았다.
상장은 그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장은 상장이 되었다.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사람을 몰라서도 아니고,
대표가 불편해하지 않을 방식으로
모든 걸 말했기 때문에.
과오를 따지고 명명백백 밝히기를 선호하는 수림은
그 사실이 불편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상장은 회사를 정말 잘 다녔다.
너무 잘 다녔다.
수림은 가끔 생각했다.
이 사람은 회사라는 게임의 룰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 룰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는 상장이 되었을 것이다.
상대편의 장으로,
대표님이 상장을 주고 싶은 관리자로,
적당한 적의를 품게 만드는 상대편의 장, 상장.
수림은 그를 보며 이 질문을 놓지 못했다.
관리란 대체 무엇일까.
사람을 살리는 일일까,
아니면 조용히 누르는 일일까.
상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고,
수림은 아직 답을 고르지 못한 사람 같았다.
(아니 자기가 회사 생활 하면서 알게 되는 정답을 여전히 부정하는 사람 같았다.)
수림은 아직 상장이 아니다.
상장은 더욱더 상장이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그 벌어진 틈에 비밀의 화원이 있었으니...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