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냥 살고 있던 시간

그 시절엔 왜 집에 일찍 안 들어갔을까

by Asurai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굳이 일찍 들어갈 이유를

잘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친구를 더 만나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밖이 집보다 더 편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시간을 조금 더 밖에 두고 오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불이 켜진 거실이 있었고,

말없이 TV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하루가 거의 끝나버렸다는 느낌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이 어쩐지 낯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밤이

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가고,

괜히 편의점에 들렀다가 들어가고,

이미 끝난 하루를

조금 늦게 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을 피하려는 마음이었는지는

그땐 잘 몰랐다.

그저

아직은 더 움직이고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멈춰 서는 순간이

괜히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은

가끔 그때의 발걸음을 떠올린다.


특별할 것 없던 골목과,

이미 닫힌 가게들,

불빛만 남아 있던 밤의 거리.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오던

젊은 날의 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요즘의 나는

오히려 집으로 빨리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있고,

별일 없는 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전엔

그런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하루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밤,

조용히 불이 켜진 거실,

말없이 함께 있는 시간.


그 시절의 나는

그걸 아직 몰랐고,

그래서 조금 더 밖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집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조용한 끝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여러 번 지나온 밤인데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이

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아마 예전의 부모님도

이런 밤을

여러 번 지나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늦게 들어오고,

누군가는 말없이 기다리고,

그렇게 하루가 끝나던 시간들.


그때는 몰랐던 그 밤이

이제는

조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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