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도 춤추고 행복할 수 있다
우울증이든 뭐든 겉으로 보면 환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에 편견이 심한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면 항상 우울해 할 것만 같고, 살고 싶지 않고, 매사에 의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엔 절대 일찍 죽고 싶지 않고, 병에 걸리기는 더더욱 싫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땐 누구보다 의욕이 넘친다.
대표적으로 나는 춤추는 것을 미친놈처럼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길거리에서 노래가 나오든 안 나오든 흥이 나는 대로 팔 다리를 마구 흔들어 재끼곤 한다. (거울이 없으니 어떻게 추는지는 잘 모른다) 특히 술이 들어가면 더하다. 술집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는 늘 나를 절정으로 만든다. 추억의 노래, 최신 걸그룹 노래 할 것없이 모두 나오는데 흥이 안 날 수가 없다.
사실 난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오징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당시 술이 떡이 된 나는 감성주점에서 벽을 붙잡고 웨이브를 하고 있었나 본데, 그 모습을 본 아르바이트생이 내 친구에게 “친구 분은 혹시…… 오징어예요? 흐느적거리셔서…….”라고 귓속말을 했다고 한다. (알바생 분은 장난으로 말씀하셨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상처였다. 내가 웨이브 퀸인 줄 알았기 때문) 그날부터 난 오징어가 되었고 그 감성주점엔 쪽팔려서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됐다.
만성 우울증 환자가 밖에서 춤도 출 수 있냐고? 지금까지 내 글을 읽었다면 알 수 있지만 나는 우울증과 관계 없이 그냥 파워 E다.
또 한 가지 믿기지 않을 만한 점이 있다면, 나는 과거 착한 아이 병에 걸려서 모든 친구들에게 산타 할아버지마냥 선물을 주고 다녔다는 것이다. 물건도 빌려 달라면 흔쾌히 빌려주고 돌려 받지 못한 적도 꽤 있다. 심지어 중학생 때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 짝꿍에게 휴대전화도 빌려줬었다. 수업시간 내내 내 휴대전화로 문자질을 해대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께 걸려서 뺏길까 봐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자아가 없이 살아왔던 나는 학창시절을 지나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자아를 가지게 됐고,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게 됐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우울증과 성격은 별개다. 성격이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착한 아이 병에서 벗어나서 느낀 바로는, 착한 것은 세상 사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를 어떠한 대가 없이 돕는 봉사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호구'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게 거절을 못하고, 주변인들의 부탁을 오백 개씩 다 들어주면서 자신의 의견도 표출 못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거다. 나의 경우엔 우울증에 걸리기 전보다 우울증에 걸린 후 리더십이 더욱 강해졌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시도해 보면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고 나는 당당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아무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나는 퇴사 후 백수로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바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우선 6살 어린 남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월요일과 수요일에 고정적으로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8시부터 10시,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는 줌바 댄스를 하러 간다. 아, 구몬 한자도 시작했다. 수요일 오후 2시30분마다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일주일 동안 교재를 제대로 풀었는지 체크해 주신다. 백수지만 남자친구에 줌바 댄스, 아르바이트, 한자 공부까지 아주 정신 없는 삶이다.
나는 현재 취업 준비 중인데, 서류 전형에 몇 번 합격했다가 2차 면접에서 떨어진 적도 꽤 있다. 아무리 긍정적이려고 해도 속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더 좋은 곳에 가려고 떨어진 걸까'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받을 땐 (어쩔 수 없이) 술을 들이키는데, 흥이 많은 파워 E에게 춤까지 곁들이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나는 우울증이라고 해서 '나 우울해요' 하고 다니는 건 싫다. 우울증인 건 인정하되 누구보다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고비가 한 번만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에 고비가 와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힘을 기르고 있는 중이고 현재 많이 길렀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기자', '퇴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심하게 뛰고 눈물을 왈칵 흘렸던 내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우울증 뭐? 어쩌라고? 퇴사한 지 일 년 됐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제멋대로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게 맞다. 나는 지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제멋대로 사는 중이다. 누구보다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