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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Nov 09. 2021

성벽과 다리의 나라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보다 성벽이 많다. 시가지로 진입하는 길에서 시야를 채우는 풍경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색창연한 성벽이 양팔을 벌려 내부를 감싸듯이 펼쳐져 있는 형상에 감탄하는 동시에 성벽들이 대부분 온전한 형태가 아닌 것에 다시 놀란다. 그중에는 군데군데 일부가 허물어진 곳도 있는가 하면, 움푹 파인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덩 크뢰즈(상한 어금니란 뜻)’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룩셈부르크에서 그러한 성벽들을 보노 있노라면 성벽을 짓기 위해 혼신을 다 하던 사람,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성을 지키며 스러지거나 혹은 거쳐갔을 수많은 사람들 모습이 필름 돌아가는 빛바랜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성벽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방에 적이 많고 불안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 서로 벽을 쌓으며 공격하고 방어하던 사람들은 어느 결에 사라지고 허물어진 성벽만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그저 생각이 깊어지고 숙연해질 따름이다.


그렇다. 울타리, 담, 성벽 그리고 수많은 요새들은 역사 이래 줄곧 우리와 함께 해 왔다. 이것들은 지역적인 경계선을 그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 마음과 행동까지 가로막는 상징물이다. 국경이나 개개인이 머무는 공간을 지키고 보호하는 담과 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으나 마음의 벽, 이념의 벽이 두꺼워지는 건 상당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생각과 바라는 방향이 다르다 해서 아예 스스로 눈과 귀를 막은 채 서로를 외면하고 비난하며 공격하는 일들이 늘어가는 상황은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렇듯 단단해지고 높아지는 몰이해와 아집의 벽을 허물 수는 없을까? 



-룩셈부르크의 성벽


성벽이 있다

허물어진 세월을 보듬은 채 비릿한 바람이 뿌린

거뭇한 그을음 삼키며 스러져가는 벽이 서 있다


한 시절 자르르 기름진 풍요 베어 물던 잇속들

삼백여 년 제 자리에 앉아 세상사 되새김질하다가

이제는 움푹 파인 그루터기처럼 곰삭아 있다


건 밤을 새우며 돌을 쌓던 사람들

덧없는 욕망의 불꽃 피우던 사람들

어느 길로 흩어져 우주 속으로 사라졌는가


그날의 이야기 스러졌어도 편월에 달 차오르듯

사윈 자리엔 들꿈 같은 풋풋한 사람의 마을 생겨나고

골무 속 여린 살내음 퍼져 오를 즈음 다시 높아가는 담벼락


긴 세월 광기 어린 해풍의 손길에 부대껴 비스듬히 누운

늙은 해송 같은 벽이 빈 마음으로 세상 보고 있는 동안

돌벽 켜켜로 스민 기운이 벽을 차고 허공으로 치솟는다.

    -강문정, <양철가슴>, 문학동네


나무와 사람, 연륜 짙은 성벽과 돌다리와 돌계단. 입체적인 룩셈부르크


천년의 요새 룩셈부르크 시


룩셈부르크는 동쪽으로 독일, 서쪽으로 벨기에, 북쪽으로 네덜란드, 남쪽으로는 프랑스에 인접해 있으며, 총면적 2,587 평방 킬로미터이고 섬유, 금속, 기계 등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1950년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나라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룩셈부르크는 유엔군과 함께 참전해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우방국가이므로 한없이 고마운 마음에 이곳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앙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자유로(Avenue Liberté)를 거치게 되는데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시가지에 진입하기 전에 보이는 성벽이 압권이다. 페트뤼스(Petrusse) 계곡에서 로쉐 뒤 복(Rocher du Bock)까지 이어진 성벽과 성벽 밑의 요새는 룩셈부르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다.


963년 지그프루아(Sigefroi) 백작이 이 암벽 위에 외부의 침략을 방어할 수 있는 성을 지은 것이 룩셈부르크 도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443년 이후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침략을 받아 성의 주인들이 바뀌는 불운을 겪는다. 그런 시련을 겪는 동안 성은 침략자들에 의해 더욱 견고한 요새로 변모한다.


이 성곽과 연결된 지하 참호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19세기 초에는 룩셈부르크 공국이 중립을 표방하면서 천 년에 걸쳐 다져진 요새를 파괴시키는 작업을 단행하고, 그 과정에서 예술품과도 같은 성벽과 요새도시 일부가 파괴된다. 2차 대전 때 3만 5천 명의 인명을 구한 이 지하 참호는 대부분 붕괴되기는 했지만 그 일부가 남아 역사의 현장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성벽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덩 크뢰즈(Dent Ceruse)이다. 그 이름과 같이 움푹 파인 상한 어금니 모양의 이 성곽은 1684년 프랑스 루이 14세 절대왕권 시대의 대원수 보방(Vauban)이 3천 명의 인력을 동원해 쌓아 올린 훌륭한 요새다. 그러나 그 허물어진 형상에서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와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성벽 어느 곳에서도 시가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나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높이가 12미터로 1, 2차 세계대전 기념탑이 있는 콩스티튀시옹(Constitution) 광장이다.


광장의 오른편으로는 세 개의 첨탑과 성모상이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눈길을 끌고, 또 한 켠으로는 국립 중앙도서관과 정부청사들이 나란히 서 있다. 또한 퀴레 가(Rue Cure)로 가면 왕실이 있는 그랑 뒤칼(Grand Ducal) 궁과 헌법재판소 등이 있다. 현재의 대공작(Grand-Duc) 왕조는 1839년 네덜란드의 왕이었던 기욤(Guillaum) 11세로부터 시작했다. 왕궁 앞으로는 다양한 상점들과 시민들로 활기가 넘치는 기욤 광장과 군대 광장이 이어지고, 이 군대 광장 한 복판에는 시민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상점들과 운치 있는 가로등이 어우러진 기욤 광장


부쉐리(Boucherie) 가에서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것이 생 미셀 성당이다. 여러 번 개축되기는 했으나 10세기 때 지어진 것으로서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다. 이어 생 테스프리(Saint Esprit) 광장을 거치면 캐논(Canon) 언덕에 설치된 기념 건축물이 솔리다리테 나씨오날(Solidarite National)이다. 이 조형물은 1971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2차 대전 때의 포로수용소와 감옥을 재현해 전쟁의 참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곳을 찾은 날 역시 중앙에 설치한 성화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룩셈부르크의 상징,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성 미카엘 성당


크고 작은 다리로 장식된 도시

 

룩셈부르크의 성벽 및 요새와 함께 또 하나 색다른 것은 도시 전체를 장식하는 크고 작은 다리들이다. 무려 95개의 다리와 5개의 길고 거대한 고가교 중 가장 현대식으로 지어진 다리는 대공작부인 샤를로트(Grande Duchesse Charlotte)이다.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유럽공동체 건물이 자리한 유럽피언 센터(Centre Europeen)를 연결하는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이 고가교는 길이 355미터 폭 25미터 무게가 무려 4천8백 톤으로 온전히 철근으로 이어진 걸작품이다. 허공을 휘가르듯 일직선으로 뻗은 다리 입구에는 유럽 공동체의 설계자인 로버트 슈만의 기념물이 있다.


또 하나의 명물은 중앙역과 계곡 위의 마을을 잇고 있는 높이 44미터, 길이 3백8미터 그리고 28개의 아치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돌로 된 고가교이다. 이런 거대하고 견고한 다리도 돋보이지만 보다 정겨운 것은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는 수많은 돌다리들이다.


대공작부인 샤를로트(Grande Duchesse Charlotte) 고가교


마지막으로 성벽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페트뤼스 계곡과 그륀(Grun)으로 이어지는 마을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14세기 때부터 형성된 건축물과 16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집들은 17세기에 스페인과 프랑스 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코르뉘슈라고 불리는 산책로와 함께 마치 시간의 흐름을 중세까지 되돌려놓은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룩셈부르크는 성벽이며, 다리들이며 분명 사람의 흔적이 닿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여러 민족에게 점령당하고 전쟁의 흠집도 여기저기 보이지만 계곡과 천연의 숲 그리고 묵묵히 흐르고 있는 강이 그 상처들을 잘 덮어주고 부서진 성벽과 돌로 된 다리들과 함께 룩셈부르크만의 독특한 멋을 조화롭게 자아낸다. 그 빛깔 역시 파스텔 색조로 은은하게 퍼져 있고, 기복이 심한 지형 때문에 도시 전체는 입체적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과도 같다.


구시가지와 계곡 아래의 꿈길 같은 돌다리와 산책로를 걸으며 바라본 미색과 연록빛, 이빛과 짙은 횟빛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물들여준 느낌이다. 아울러 룩셈부르크의 성벽에 스민 연륜 깊은 분위기가 돌아오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사는 동안은 물론이고, 언젠가 이승을 떠난 후에라도 혹여 누군가의 마음에 나로 인해 쌓인 담이나 벽이 흉물스레 남아 있지 않도록 내 자신을 살피면서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하며 모나지 않게 사는 법을 익혀야겠다.


허물어진 성벽과 삭은 돌다리마저 조화롭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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