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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Nov 17. 2021

프랑스 샹파뉴의 보석 트루아

기차가 달린다. 기차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잘 찍은 슬라이드를 연결해서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늦가을 빛깔과는 대조적으로 초록 들판과 언덕은 햇살을 받아 더욱 윤기 흐르고 그 위에서 양들은 활짝 핀 솜 꽃으로 피어난다.



슬라이드 찰칵찰칵 돌아가듯이 차창 네모 액자에서 움직이는 세상은 내 꿈과 생각이 자라도록 사색의 씨앗을 쉴 새 없이 흩뿌려 준다. 특이한 점은 신기하게도 내 두 눈은 분명 현실을 보면서 가고 있는데 내 안 생각은 창밖 풍경과는 전혀 다른 공간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 기억 속에 갈래갈래 놓여있는 길과 거리, 그 공간 속 사람들 모습, 그들과 함께 했던 어느 날, 어느 순간이 홀로그램처럼 도드라지다 사라지고 그렇게 떠올랐다 희미하게 접히고는 다시 내 기억의 집으로 돌아와 차례차례로 눕는 것이다.


그렇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아득한 꿈을 헤매는 것과 같다. 여행은 자신이 속한 곳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나를 비롯해 대부분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마주 대하는 유서 깊은 건축물과 연혁, 박물관 등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감탄하며, 순간을 담기 위해 숨 가쁘게 기록으로 남긴다. 사실 그건 여행하는 동안 여행자가 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덧붙여 '마음으로 본다'는 표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앞다투어 자기 방식대로 설파한 내용이겠으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단연코 프랑스 작가 생 택쥐베리를 먼저 연상할 것이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의 필독서’라 일컬어지는 <어린 왕자>에서 사람은 마음으로만이 잘 볼 수 있다(“On ne voit bien qu’avec le Coeur”)라는 명문장을 남겼다.


유로화 이전에 사용했던 그림 같은 프랑스 프랑 화폐 속에 등장한 어린 왕자와 생텍쥐베리


언젠가 미술사 박사로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친구가 재치 있는 말을 해서 유쾌하게 웃은 적이 있다. 그는 이해심과 포용력 있는 좋은 사람이고 실력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미술사 교수, 그야말로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말에 공감했다.


“생 텍쥐베리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해서 학생들이 과제물을 낼 때, 다 생략하고, 그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만 써내는 거야. 아무래도 나중에 생 텍쥐베리 선생을 만나면 한 마디 해야겠어.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생텍쥐베리가 한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절감한다고 했다. 학생들 중에는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대할 때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이론 공부를 등한시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염려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했다. 전공자는 감성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론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학문이 아닌 여행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떠나기 전부터 가는 과정 그리고 목적지에서 직접 보고 체험한 느낌이 여행 후에도 자신의 삶 속에 큰 부피로 남아 넉넉하게 자리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어느 분야건, 어떤 경우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론적으로도 잘 알고, 감성적으로도 절절하게 느끼면서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겠으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균형을 맞춘다는 것,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분명한 건 여행에선 어느 정도 포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리하고 정확한 사고와 냉철한 이성 없이 감성만으로도 가능한 것이 여행이다. 그래서 좋다. 예를 들자면 가끔 예상치 못 하게 내가 갈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들어섰다거나 물리적인 영향을 받아 에둘러 간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여운으로 남거나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 트루아도 그랬다. 그곳은 프랑스 샹파뉴에 속해 있으며,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중세 마을이다. 트루아는 역사와 예술에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곳이라서 프랑스 국가위원회에서 역사적 예술 마을로 선정한 지역임에도 여행지로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다. 나 역시 그날, 그곳이 목적지가 아니었는데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마을 풍경이 내 마음에 그림처럼 들어와 발길을 멈췄다. 


누르스름한 밀밭마다 추수를 끝내고 나서 밀짚단을 둥그렇게 말아놓은 풍경이 절미했다. 고요가 맴도는 들판 넘어 마을 입구에는 성조기와 삼색기가 어우러져 바람에 나부끼고, 이어지는 거리와 광장엔 축제 분위기로 한껏 술렁였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에게 마을이 점령당한 치욕을 연합군의 수장, 미국의 패튼 장군이 만회해 준 것이다. 리베라시옹(해방) 광장 한가운데엔 패튼 장군 부대가 타고 들어온 탱크가 줄지어 앉아 사람들의 감탄과 감사를 받고, 사람들은 깃발이 휘날리는 골동품 같은 탱크 앞에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듯 보였다.


나무와 회반죽으로 절묘하게 만들어진 전통 가옥들과 오랜 시간 바람 때 끼어 거무숙숙한 교회 건축물들이 늘어선 골목길은 그 어느 마을보다 연륜과 굴곡의 이끼를 품고 있다. 전설 같은 이름 아틸라가 참전했던 전쟁과 복잡한 역사 속 인물들, 앙리 5세와 프랑스의 카트린느의 결혼식 등은 이 마을에서는 한 점, 점으로 기록될 뿐이다. 그 점과 점들이 면면히 현재로 이어지며 그것들은 들판의 둥그런 밀짚처럼 시간 속으로, 역사 속으로 구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의 손과 힘으로 지어져 사람에 의해 파괴되고, 또 그렇게 사람의 재능과 에너지로 만들어져 시간에 의해 삭아가는 형상들이 오히려 자연과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서로 다른 빛깔로, 서로 다른 성향으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존재하는 우리도 그처럼 공존해야 하고, 공존 자체를 넘어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이뤄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공존은 빛난다

-중세 마을 트루아에서 풀어내는 단상



늦여름 바람기 일어 쉼 없이 달려 찾은 곳 수확 끝낸 밀밭엔

둥글게 말아 놓은 밀짚단 마실 나온 뭉게구름과 이야기하고

군데군데 쭉정이 태운 들불 향이 막혀있던 오감을 뚫어줄 때

들판에 피어 오른 연기는 현란한 홀로그램 되어 아른거렸다


중세의 흔적은 회색 종이 연처럼 하늘을 날고 검푸른 이끼와 

바람 때 얼룩진 성당들은 굴곡 있는 세월의 흐름 묵묵히 품고

허물어진 콜롱바쥬 집에 패인 총알 자국과 회반죽 일렬로 선

나무판들은 삭고 금 간 채 태양 아래 부끄러운 듯 서 있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져 파괴되고 사람에 의해 되살아난 마을

트루아에 닿기까지 이름조차 부르지 않던 낯설음은 잦아들어 

마을 입구 가득히 사람 향기와 풀내음 풍겨 살갑게 다가왔다



골목에 늘어선 골동품점과 기념품 가게마다 환하게 미소 짓는

고수머리 부처와 까까머리 동자상들 화려한 상품에 가린 채

쓸쓸해 보였지만 이국의 땅 프랑스 작은 마을 후미진 골목에

앉아있는 그 모습 고향의 이웃처럼 다가와 향수를 일깨웠다


노천카페엔 사람들 술렁이고 광장에 줄 지어 있는 탱크마다

성조기가 펄럭였지 패튼 장군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고도까지

그 이름 새기고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 애써 독일의 점령과

연합군을 외면하려 하지만 2차 대전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지


트루아엔 삼색기와 성조기가 어우러지고 고색창연한 교회와  

미소 짓는 부처가 오묘한 조화로 고요하니 평화는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비친 수정 햇살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날아가 담긴다. 




꼴롱바쥬 기법으로 만들어진 트루와의 전통가옥




트루아는 파리로부터 남동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중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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