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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Dec 30. 2021

연극 축제의 도시 프랑스 아비뇽


곱게 물들인 단풍으로 치장한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담황색 지붕들, 고색창연한 탑과 성벽의 빛깔이 절미하다. 그 아래로 하늘빛 물비늘을 일으키며 론(Rhône) 강이 허물어진 아비뇽의 다리를 어루만지듯 흐르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은 프로방스에 위치한 보클뤼즈의 중심이다.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드는 론 강가에서 바라본 아비뇽과 베네제 다리.


끊어진 베네제 다리와 교황궁 그리고 1947년 이래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 세계 연극제로 잘 알려진 도시 아비뇽은 이런저런 주요 행사가 이어져 늘 분주하다.


아비뇽 시가지와 아비뇽 연극제를 알리는 포스터. 연극제는 매년 7월에 시작된다.


내가 아비뇽을 찾은 날은 비교적 한가로웠고, 밤새 내린 겨울비 덕분에 도시 전체가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비뇽엔 여느 도시와는 색다른 성벽이 문지기처럼 서 있다. 론 강을 따라 도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울타리처럼 아늑하면서도 운치 있다. 총 길이 4.5킬로미터인 이 성벽은 아비뇽에 머물던 교황 중, 5대 교황인 이노센트 6세 때인 1355년부터 축조되어 7대 교황인 그레고리오 11세 때 완성되었다.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성벽은 아비뇽이 성곽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


남서 지방을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던 무리들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요새와도 같은 성벽은 프랑스에서 잘 보존된 성벽으로 손꼽힌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아비뇽의 중심인 시계 광장으로 발길이 닿는다. 구시가지인 시계 광장에는 19세기에 지어진 시청사와 테아트르(연극 극장)가 나란히 서 있고, 그 이름처럼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다. 14세기부터 15세기 초에 걸쳐 지어진 이 종루는 고딕 시대의 몇 안 되는 주요한 유적이며, 매시간 은은한 종소리가 혼탁한 세상의 먼지를 훑어내듯이 울려 퍼진다.


아비뇽 시계탑 광장


광장에서 우뚝 솟아 보이는 건축물이 바로 그 유명한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apes), 우리말로 하면 교황 궁이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전역을 황폐화시키고, 어지럽히던 분쟁과 소요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될 즈음, 교황청이 옮겨진다. 성직자에게 부과하는 세금 문제로 야기된 프랑스 왕 필립 4세와 보니파키우스 교황과의 팽팽한 갈등은 모두를 긴장시킨다. 보니파키우스 교황이 선종하자 필립 4세는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한다.


아비뇽 교황궁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로 시작하여 요한 1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지는데, 이로써 아비뇽은 제2의 로마로서 부각된다.


특히 종교인과 예술인, 외국인과 중개상인 그리고 정치적 망명자들조차도 두루 포용하는 힘이 있었기에 이 도시는 급속하게 번성하기에 이른다.


비탈진 언덕을 오르면 장엄하고 웅장한 성채와도 같은 교황궁과 마주한다. 바라보는 이를 압도하는 팔레 데 파프는 그 번성하던 시기, 권력과 위엄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북쪽에 위치한 구교황궁은 아비뇽에 3대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2세 때 지어졌고, 남쪽의 신교황청은 4대 교황인 클레멘스 6세와 이노센트 6세 때 건축된 것으로 호화로운 장식이 돋보인다.


그곳과 거리가 좀 있긴 해도 교황궁 박물관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축물 내부, 전시장에는 중세로부터 르네상스에 걸쳐 희귀한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교황궁 옆으로 보이는 건축물은 12세기에 건축된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당 앞에는 성모상이 아비뇽 시가지를 수호하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아비뇽 시가지를 수호하듯 언덕길 오르막에 우뚝 서 있는 성모상.



망루에서 만끽하는 론강 일대의 풍경


성당에서 나와 걷다 보면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이 눈에 띈다. 여러 개의 조각상과 샘, 그리고 나무들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지역이 바로 아비뇽의 출발점이며 요람인 로쉐 데 돔이다.


이곳 망루에서 바라보는 아비뇽과 그 일대의 경치가 일품이다. 론 강 건너편으로 빌뇌브 레쟈비뇽(아비뇽의 새로운 마을)의 소박한 풍경과 론 강 위로 솟은 반쪽짜리 다리인 르 퐁 베네제, 그리고 더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과 숲 그리고 들판과 론 강변의 조화는 망루의 고요함과 함께 시간도 존재도 잊는 무아지경으로 나를 이끈다.


빌뇌브 레자비뇽과 베네제 다리.


언덕을 내려와 시계 광장으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고요로 말끔하게 정화시킨 내 귓가에 다시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림으로 메워진다. 지나치지 않은 적당한 소음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과 함께 도시와 나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느낌이 들어 그다지 싫지는 않다.


광장과 주변에는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개성 있게 단장한 카페들과 식당이 즐비하다. 찬기운 감도는 겨울이지만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뜨거운 차 한잔으로도 몇 시간 냉기에 언 몸을 녹일 수 있어 좋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표정에서도 훈기를 전해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에 이 도시의 골목골목을 걷는다. 예술의 도시답게 곳곳에 전시장과 박물관이 다양할뿐더러 후미진 골목까지도 그런 기운이 묻어난다. 1970년대에 완전히 리모델링된 발랑스 구역은 앞서 찾아본 성벽 주위로부터 아비뇽의 다리까지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한 소년의 용기와 의지로 세워진 르 퐁 베네제, 허물어진 채 8백여 년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담겨 세계로 옮겨져 간 아비뇽의 다리와 론 강의 정취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아비뇽의 골목길



PETITE HISTOIRE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로 잘 알려진 아비뇽, 사람들은 이곳에 놓인 다리를 '아비뇽의 다리'라 부른다. 그러나 다리의 원래 이름은 르 퐁 생 베네제(Le pont Saint-Bénézet)로서 12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 다리에 얽힌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친근하게 이어져 내려온다.


12세기 말 비비에 마을 근처에서 양을 치던 목동 베네제는 열다섯 살 때, 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강렬한 영감을 받고 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지만 아비뇽 사람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비웃고 손가락질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제가 길에서 만난 천사는 그에게 서른 명의 장정들 힘으로도 들 수 없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보라고 한다. 베네제는 몇 번을 망설이고 머뭇거리다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서 바위를 들기 위해 온 힘을 모은다.


그러자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베네제가 아무리 힘을 모아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의 도움으로 베네제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 강으로 옮길 수 있게 되고,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다리 놓기에 참여하게 된다.


베네제 목자는 견고하고 굳건한 다리를 세우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정성을 쏟았고, 1177년에 시작된 대공사는 1185년에 마침내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 후 베네제 목자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아 세인트 베네제(생 베네제)로 불린다.


처음 다리가 완공되었을 때, 그 길이는 약 900미터였고, 22개의 아치형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닷물의 범람으로 점차 파괴되기 시작했고, 1226년에 대부분이 붕괴되어 현재는 4개의 아치만이 남아있다.


두 번째 교각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교회, 생 니콜라가 동그마니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비뇽의 다리는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예술가와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용기를 일깨워주는 ‘전설의 다리’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형태가 완전하지 않기에 사람들 마음에 더욱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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