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열두 살의 나, 서른의 나, 지금의 나

by 상서StellaYoung

열두 살의 나는 내가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집 안에 늘 켜져 있던 TV, 부모님이 틀어놓던 라디오,

언니들이 좋아하던 노래들이 공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시절의 음악은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었다.

나는 듣고 있었지만 고르고 있지는 않았다.

언니들이 듣던 노래, 어른들의 소리 언니들이 따라 부르던 노래는

조금은 어른의 세계 같았다.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멜로디를 흉내 내며

괜히 나도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은

누군가의 이별 이야기,

누군가의 외로움,

누군가의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감정들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연습도, 선택도 아닌 감정의 조기 학습 같은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나는 유행을 따라 불렀다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대중가요가 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모두가 아는 노래,

모두가 따라 부르는 가사.

그 노래들을 부르지 않으면 어딘가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노랫말 속 감정은 내 삶보다 훨씬 앞서 있었고,

나는 아직 겪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먼저 살아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감정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감정에 끌려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어 아이를 낳고

내 삶에 처음으로 ‘동요’라는 음악이 다시 들어왔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틀어주던 음악이었다.

잠을 재우기 위해, 놀아주기 위해, 그저 배경처럼 흘려보내던 소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동요의 가사가 너무 예쁘고 귀하게 들렸다.

불필요한 말이 없고,

상처가 되는 문장이 없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표현도 없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소리는 이렇게 맑을 수도 있구나.”

정돈된 음악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 아이를 키우며 나는 점점 더 피곤해졌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다.

그때부터 아무렇게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사가 많은 노래,

감정을 몰아붙이는 음악,

빠르게 변하는 리듬들이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

그때서야 나는 내 삶에

정돈된 음악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돈된 음악이란 고급 음악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흩뜨리지 않는 소리,

내 하루를 망치지 않는 소리다.

지금의 나는 소리를 고른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아무 소리나 듣지 않는다.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기 때문에 듣는다.

잠들기 전에는 나보다 먼저 잠드는 소리를,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소리를,

마음이 불안할 때는 속도를 늦춰주는 소리를 고른다.

이건 까다로움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돌이켜보면 삶은 늘 소리와 함께였다.

다만 예전에는 소리가 나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내가 소리를 선택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열두 살의 나는 몰랐고,

서른의 나는 뒤늦게 알았고,

지금의 나는 의도적으로 고른다.

이 장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흐름을 지나왔을지 모른다.

다음 장에서는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불안·우울·불면이라는 서로 다른 상태에

어떤 소리가 도움이 되었는지를

실험적인 시도와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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