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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테하라 Oct 16. 2023

늑대와 일곱 마리 새끼염소

시계상자로 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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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엄마 염소와 일곱 마리 새끼 염소는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민담 서두에서 그렇게 나왔으면 그들의 애착 관계는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동물로 표현된 것은 아직 존재로서 미분화되기 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직 존재로 발전하지 못한 미숙한 동물은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했다. 

어느 날은 갑작스레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그 시기, 그날이 바로 어느 날이다. 그때가 오면 엄마의 보호를 벗어나 다른 발달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성숙한 엄마는 아이들 곁을 가끔씩 떠나야 한다. 그리고 성숙한 엄마는 악에 대한 경고를 해준다. 여기서 악은 늑대이다. 늑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말도 함께 알려 주지만 새끼 염소들은 평화롭게 살았기에 변화라는 개념, 즉 형태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끼염소들은 자율을 배울 시기가 되었기에 염소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완고하고, 인색하고 완벽하게 자기중심적인 염소. 하지만 엄마 염소는 성숙하기에 새끼 염소들에게 조심을 시키며 떠났다. 

엄마가 하는 말은 왜 다들 잔소리로 듣는지, 새끼 염소들은 엄마의 말에 매에, 매에 하며 알았다고 했다. 거친 목소리와 검은 발을 가진 악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지혜이다. 어른들은 항상 그것들을 아이들에게 경고하지만, 세상은 선하고 아름답게 느끼게끔 키운 아이들은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거친 목소리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말이고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는 검은 발을 가진 늑대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새끼 염소들은 자기들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엄마 염소가 집에 없다는 걸 안 늑대는 새끼 염소들을 잡아먹으려고 그들의 집으로 갔다. 늑대의 거칠고 쉰 목소리를 듣고 미숙한 새끼 염소들은 ‘우리 엄마 목소리는 고와요.’라는 비밀 정보를 누설한다. 늑대는 고운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분필을 한 토막을 먹고, 고운 목소리, 부드럽고 다정하고 유혹적인 목소리로 다시 문을 두드린다. 분필은 지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꾼의 목소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거기다 합리적이고 논리까지 탑재하면 누구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비전이라며 허상을 제시하는 목소리. 종교와 사기꾼들의 목소리에 넘어가는 새끼 염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새끼 염소들은 늑대의 발을 창턱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늑대는 발을 보여주었다. 검은 발을 보고 두 번째 비밀 정보를 누설한다. ‘우리 엄마 발은 그렇게 검지 않다’고. 늑대는 다시 실패했다. 하지만 악은 포기하지 않는다. 빵가게 주인에게 반죽을, 방앗간 주인에게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만들어 다시 염소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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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방앗간 주인은 늑대가 누군가를 속이려고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누군가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불의에 방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안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새끼 염소가 사는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자신이 위험해지면 모른 척할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누군가의 표적이 되면 주변인들은 용기를 가져야 그들을 구할 수 있다. 복수형이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악인을 물리치기가 쉽지는 않다. 

새끼 염소들은 두 번이나 늑대를 알아보고 그를 물리쳤다. 자신들이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에 차 있을 때 또 늑대가 왔다. 새끼 염소들은 발을 보여달라고 했고 창턱에 올려진 하얀 발을 보고 문을 열자 들어온 것은 늑대였다. 겁에 질린 새끼염소들은 식탁 밑, 침대 밑, 오븐 속, 부엌 안, 찬장 속, 세면대 안에 숨었지만 늑대는 모두 찾아내서 삼켜버렸다. 오직 막내 새끼 염소만이 벽시계 상자 안으로 숨었다.

미숙한 사람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본능과 가장 가까운 장소로 숨는다. 식탁이나 오븐이나 부엌, 찬장은 먹는 것과 연관이 있고 침대 밑은 쉬는 것과 상관있고, 세면대는 씻는 것과 상관이 있다.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외로우면 먹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씻는 것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은 악에 먹힌다. 악에 먹히는 것은 나쁜 장소로 가는 것뿐이 아니라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행동, 위험한 사건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게 하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막내 새끼염소만이 벽시계 상자 안으로 숨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늑대는 막내를 발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늑대는 본능대로 움직이는 동물이지 합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시계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기계장치다. 그곳은 막내 새끼염소만이 생각해서 행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7개 중에 6개는 먹히고 1개는 살아남았다. 7이란 완전수로 일주일 즉 매일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단계로 가는 사다리를 의미한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 마리 새끼 염소는 이제 다른 발달단계로 넘어가는 사다리이며 그 위에 있는 막내 새끼 염소만 살아남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마 염소가 왔을 때 열린 문과 엉망인 집안을 보았다. 여기서 본다는 행위가 나온다. 미숙한 아이들이 보는 것과 성숙한 어른이 보는 것은 다르다. 성숙한 어른이 보는 것은 인식하여 상황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러면 대처 방법을 알 수 있다. 

엄마 염소는 울다가 막내 새끼염소의 목소리를 들었다. 보고 듣는 것은 지성과 연관이 있고, 운다는 것은 감정과 연관이 있다. 엄마 염소는 우는데 새끼 염소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새끼 염소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표현하지 않는 것뿐이다. 감정처리의 미숙함, 표현의 미숙함도 여기에 해당한다. 감정은 주관적이어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이 성숙함이다. 

작은 목소리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고 엄마이기에 그를 찾아낼 수 있다. 요즈음 엄마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것이 영아들의 표현을 알아채지 못하여서라고 한다.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것인지, 아픈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보고 들으면 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엄마라서 알아채고 성숙해서 안다. 현재의 상황을 들려줄 때 성숙한 사람은 그들의 말을 경청한다. 

엄마 염소는 막내 새끼염소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늑대를 ‘본다.’ 관찰대상을 탐색하고 막내 새끼염소에게 가위와 실과 바늘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행동한다. 가위로 늑대의 배를 가르고 돌멩이를 넣었다. 재단에 필요한 도구들이다. 가위는 날카롭지만 원하는 부분만을 자를 수 있는 도구이다. 넘치는 부분은 자르고 미숙한 부분은 바늘과 실로 붙일 수 있다. 늑대가 새끼염소를 잡아먹고 충만감을 느끼고 있을 때 신속하고 재빠르게 행해야 한다. 

돌은 늑대의 죄의식이다. 새끼염소를 삼킨 그에게 아무런 죄의식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탐욕을 채운 자들도 편하지 않다. 그들은 탐욕대상을 먹은 죄의식으로 더 포악하고 더 잔인하게 행동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스스로 말하길 지은 죄는 6인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우물물을 마시려다가 우물에 빠졌다. 늑대가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늑대는 악은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미숙한 새끼염소들은 항상 조심해야 하니까. 늑대의 배속은 어둡고 좁고 절망만 있는 장소였다. 새끼염소들이 처음 보는 나쁜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빠져나와 사랑하는 엄마 염소를 만나 자신들에게 익숙한 세상을 다시 보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들은 춤까지 추었다.

이 민담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숙한 우리가 늑대라는 악을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회피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탈출하는가를 말한다. 6마리는 잠시 악에 잡아먹혔지만 하나로 인해 다음 발달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보호해 준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절대로 희망을 놓지 마라.’ 희망이 신이다. “Ach G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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