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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테하라 Oct 16. 2023

이상한 악사

난 아무런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다만 친구를 원해

‘옛날’에 혼자서 잘 놀았다면, 지금도 혼자서 잘 놀 수 있다. 절대 고독 속에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다. 사람은 숲같이 두렵고 무서운 공간 속에 갇혀 있어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무리 속에서도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지금은 고립되어 있다고 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여럿이 있다고 해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을 거절하는 사람도, 자신이 거절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들은 자기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상황이나 사람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친 현대인들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또 스트레스이다. 나와 다른 환경, 정서, 가치관, 정체성을 가진 무리와의 만남은 사회 속에 있기에 피할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친구를 찾는다. 나와 같은 생각과 환경과 정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르지만 공감할 사람을 말이다. 친구는 같은 것을 보고, 듣고 같은 장단에 춤을 추고, 같은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기쁨을 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또 자유롭다. 

 숲은 마법의 장소이고 무의식 영역이고 친근하면서 은밀하며 무서운 곳이다. 생각에 잠긴 악사는 혼자서 그곳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고민과 걱정을 다 떨치고 스스로 좋은 친구를 갖고 싶어졌다. 그의 등에 있던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를 하였다. 바이올린은 다른 악기들도 마찬가지지만 연주자에 맞춰서 만들기도 하고 자신만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현악기이다. 물론 나무로 만들었다. 바이올린은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흑단나무를 가지고 만든다. 바이올린 목 위에 현을 감는 줄감개와 줄감개집이 있다. 초창기에는 3개의 현이었는데 현재는 4개의 현이 있다. 높은 음역의 악기로 울림이 강하고 감미롭고 명료하며 또 넓은 음역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렇게 자세히 바이올린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당연히 악사는 숲과 친숙하고, 이상한 악사에 나오는 동물들과 그 동물들에게 악사가 한 행동들 때문이다. 

악사의 연주가 울려 퍼지자 동물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그의 연주에 감명받았으니 자기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여기서 악사는 자기는 '욕망'이 없다고 했다. 동물들의 욕망이 지금의 그에게는 없다. 그는 지금 숲에 있고 자신과 함께 음악을 듣고 기쁨을 나눌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음악은 매혹적이어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홀리게 하기도 한다. 얼마나 교활한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거리가 다 떨어졌다. 평온하고 무엇인가로 충만한 그는 욕망도 없고, 누구를 가르칠 마음도 없다. 

덤불 속에서 나타난 늑대는 공격적인 본성을 가진 타인이기도 하고, 탐욕스러운 자신의 내면이기도 하다. 덤불은 복잡한 나무들의 총합처럼 속을 알 수 없다. 늑대의 공격성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향하게 될지 모른다. 늑대의 간청을 거절하지 않고 그는 받아 들었다. 그리고 가는 길이 있는 오래되고 가운데가 길게 갈라진 늙은 참나무를 발견하고 늑대의 앞발을 그곳에 박았다. 속이 빈 참나무는 바이올린의 몸통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것은 악사에게 익숙하지만 기발한 생각이다. 사고의 확장이 이런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러고 있으라고 말하고 떠났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지만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늑대가 무의식 안에 있는 동물적 본성이라면 그들은 죽지 않을 것이니까 그 말은 참으로 외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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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나타난 동물은 여우이다. 늑대만큼의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계략과 술책을 가진 교활한 여우는 나무 사이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역시 여우도 그가 원하는 동물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누군가는 나도 모르게 어떤 문제에 휘말리게 할 사람이다. 여우는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구부린 개암나무로 여우를 왼쪽 앞발을 묶고 다른 쪽에는 오른쪽 앞발을 묶어 여우를 공중에 떠 있게 했다. 개암나무의 장력은 현의 장력과도 비슷하다. 매듭을 팽팽하게 묶인 것과 같으니까. 늑대와 똑같이 말하고 갈 길로 갔다. 

이번에는 토끼가 깡충거리며 뛰어왔다. 토끼 역시 악사가 기대한 사람이 아니다. ‘오, 난 그것을 원하지 않아.’ 

토끼는 수동적이고 약한 데다가 돌봐주어야 한다. 토끼 같은 사람은 내가 가진 것들, 힘이든, 물질이든, 시간이나 감정까지 나눠주어야 하므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고 나까지 곤경에 처하게 하는 존재이다. 악사는 이번에는 사시나무가 있는 빈터로 나오자 토끼의 목에 긴 끈으로 묶고 다른 한 끝은 사시나무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나무 주위를 20바퀴쯤 돌게 했다. 토끼는 악사가 시키는 대로 했고 사시나무 기둥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산토끼의 목은 죄어들었다. 악사는 다른 동물들에 말한 것처럼 똑같이 말하고 악사는 자기 갈 길로 떠났다.    

              


숲을 혼자서 가는 건 외롭다. 빌딩 숲이라고 하듯이 사람 숲 속에서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누리고 싶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악사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든다. 매혹적인 음악을 듣고 오는 친구 중에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있다. 음악뿐이 아니다. 빛나는 재능, 물질, 외모는 늑대와 여우와 토끼 같은 친구들은 우리에게 덤불 속에서, 살금살금, 깡충깡충 다가온다. 그럴 때 그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방법으로 적당히 거절해야 한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다루면서 주변의 나무들을 활용하는 악사처럼 행동해야 한다. 늑대와 여우와 토끼는 공동의 적이라며 악사를 쫓아온다. 만약에 악사가 성심껏 그들을 가르쳐서 교화시킬 수 있었을까? 친절하게 대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악사의 행동이 지나친 게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들 때, 악을 아는 것은 지혜이며, 악을 피하는 것은 슬기다. 나쁜 것들이 있을 때는 피해야 한다. 내가 늑대만큼 공격적이지도, 여우만큼 교활하지도 않고 토끼처럼 나약한 것이 아니면 피하고 본다. 

또 악사는 그들과 싸우러 들지 않았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악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친구라고 해서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는 친구를 원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것이지, 사냥하기 위해 동물들을 유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연주하자 이번에는 가난한 나무꾼이 감미로운 음악 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왔다. ‘바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야.’ 악사는 아름답고 황홀한 연주를 하자 가난한 나무꾼은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그 소리에 감동받고 기뻐하며 자신의 도끼를 겨드랑이에 끼고 곁으로 가서 음악을 들었다. ‘가난한’이란 단어가 긍정적인 언어로 나와서 반가웠다. 가난한 나무꾼은 악사처럼 아무런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노동하는 자이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적당한 공격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신적 교감을 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동물들의 악의를 눈치채고 악사를 보호하는 몸짓을 했다. 친구는 내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미리 차단해 주는 사람이다. 나무꾼은 다른 동물들처럼 악사에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고 충분히 감사할 줄 알았다. 노동하는 자에게 문화를 선사하고 문화는 또 노동을 더 값지게 해 주었다. 동물들이 나무꾼을 보고 숲 속으로 도망치고, 악사는 한 곡 더 연주하고 서로 헤어졌다. 

타인의 재능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파괴적인 힘을 가진 숲에서 마법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숲을 통과하는 악사가 뭐가 이상한 악사인가? 놀라운 악사이다. 건강한 사람은 사람들 무리 속에 있어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 거절도 잘하고 가끔 냉정하고 깐깐하여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목적에 충실하여 중간에 길을 잃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제하지는 못해도 그것이 끼칠 영향을 알고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가 주는 호의는 그냥 주는 것이니 감사히 받으면 된다. 그가 말했지 않은가, 지금은 아무런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친구를 원했을 뿐이라고. 건강한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는 기이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옛날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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