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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테하라 Oct 16. 2023

내일 놀자.

늑대와 일곱 마리 새끼염소를 생각하며

이제 6살 된 지인의 아들이 유치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늑대와 일곱 마리 새끼염소와 이상한 악사가 떠올랐다. 아이는 '누군가'이다.

누군가의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누군가'가 개구쟁이 동무와 친해진 뒤에 노는 게 좀 거칠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물론 워킹 맘이다. 그 날밤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생각해 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네가 생각해서 행동했으면 좋겠어." 엄마의 말을 들은 '누군가'는 다음날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 선생님의 말은 이랬다.

유치원에 개구쟁이 동무가 있는데 그 아이랑 친하게 놀게 되었다. 그런데 개구쟁이 동무의 노는 방법은 조금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아이랑 같이 놀면서 소리 지르고 다른 동무들을 아주 조금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개구쟁이 동무가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다만 재미있는 놀이다. 6살 먹은 아이들의 나쁜 짓이라고 해봤자, 뭐 얼마나 나쁘겠는가. 기껏 해봤자 블록 쌓은 것 무너뜨리고 다른 친구 놀리고, 음식 투정하고 부정적인 단어 몇 개라고 선생님은 아마도 우회적으로 순화하면서 아이의 변화를 엄마에게 말했을 것이고, 엄마는 그것을 알아챘다. 

사랑을 듬뿍 받고 크지 않은 아이가 요즘 얼마나 있겠는가? 넘치는 사랑으로 아이들은 질식할 정도이니까 문제지.


'누군가'가 유치원에 갔을 때 개구쟁이 동무가 다가와 놀자고 했다. 

"이따 가 놀자."

라고 말했다. 개구쟁이 동무가 생각한 '이따'가 왔을 때 '누군가'는

"내일 놀자."

라고 말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아이는 개구쟁이 동무에게 "내일 놀자"라고 말했고 그다음부터는 개구쟁이 동무가 놀자고 하지 않았다.


새끼 염소가 늑대의 배속에 들어갔을 때 엄마 염소의 행동은 가위를 든 재단사처럼, 정원사처럼 침착하고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다가온 늑대(심하지만) 같은 동무에게 한 행동은 엄마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아기 때부터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는 상대에게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마래.'라는 말도, 무시도, 어떤 부정적인 것도 하지 않고 '이따 놀자'라고만 했다. 벽시계 상자 안으로 들어간 막내 새끼염소처럼 행동한 것이다.

이상한 악사가 늑대가 곁에 왔을 때 참나무를 이용하고, 여우에게는 개암나무를 이용하고, 토끼에게는 사시나무를 이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라고 말한 것처럼 '내일 놀자.'

아이가 만약에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움과 처벌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사고하게 하는 것, 쾌락원리를 조정하게 하는 것은 아이와의 애착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에 달렸다.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결코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뢰는 불안으로 써야 되는 에너지를 창의적으로 쓰게 한다. 

사랑은 참는 것. 온화한 것.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까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말해놨다. 아이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면 참는 것은 답이 아니다. 부모가 해주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가 해놓은 것들이 얼마나 어설픈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걷기 위해 아이들은 몇 번이나 넘어진다. 앉고, 뒤집고, 기다가 섰을 때 아기는 자신의 성취감으로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그리고 걷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때 부모가 할 일은 바닥을 푹신하게 해주고 온 신경이 아이에게 가 있지만 결코 내비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 뿐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오른쪽, 왼쪽 바꿔 신은 신발, 자신의 운동화 끈을 매는 것을 대신해주고 싶을 때가 많아도 우리는 참아야 하고 그것을 한 아이의 성취에 기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율성을 갖게 되고 모험과 도전의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도한 칭찬은 또한 자제해야 한다. 자아팽창감으로 주변을 무시하게 된다. 아이가 부모를 무시하게 해서도 안 된다. 부모가 되는 것은 역시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려움을 넘어서는 기쁨을 주기에 인류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단풍잎같은 손을 보라.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는가.

지인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그림형제 민담들의 아이들 아니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을 대신해 준 부모를 가진 아이들, 가난한 엄마를 가진 아이,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여행을 떠난다. 그때마다 만나는 마법 같은 일들, 아니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다. 

읽는 도중에 특별한 순간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현실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원인을 알게 되면 고약한 기분이 든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읽다보면 또 내 이야기이다. 치유과정이 힘겹지만 노력하면 된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만의 강인함이 있다고 한다. 자, 또 여행을 떠나보자. 모두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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