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테하라 Oct 16. 2023

어리석은 한스

관계란 일하는 것처럼 힘겹게 노력하는 거야.

번역은 '영리한 한스'라는 제목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한스'이다. '어리석은 한스는 영리한 척한다'는 속담이 있다.

대화체의 민담은 내 말만 할게. 넌 듣기만 해라. 하는 것 같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이 알아서 이해해라 뭐 그런 거다. 그것은 너무 일방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 한스에게는 정말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으니까. 

줄거리는 반복적으로 엄마는 어디 가냐고 묻고 한스는 그레텔네 간다고 한다. 너는 무엇을 가져가니? 나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레텔은 한스가 올 때마다 바늘, 칼, 새끼염소, 베이컨, 송아지를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레텔이 한스에게 온다. 엄마는 한스가 가지고 온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한스는 그때마다 ‘걱정하지 마요. 다음엔 잘할게요.’라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한스 집에 온 그레텔을 외양간에 묶자, 엄마는 한스에게 눈빛을 주라고 하자 외양간에 있던 양과 소의 눈알을 뽑아 그레텔에게 던져주자 그레텔은 도망쳤다. 그런데 그레텔은 한센의 부인이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우습지만 기괴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 바보 한스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보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자기는 절대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하면 세상과 싸울 힘이 생기는 줄 아는 바보다. 공부는 사람과 만나서 체득되는 것도 포함하여야 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일관성을 가진 한스와 한스가 오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주는 그레텔과 언제나 조심하라고 하는 엄마. 그들의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 집 문제 있다. 한스는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다. 바보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상에는 바보가 많고 그 바보에게 자신까지 내어주는 바보들도 많다. 

똑같은 대화, 똑같은 엄마, 똑같은 그레텔이지만 하나도 같지 않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바보에게 엄마는 조심해라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다. 한스가 언제나 가는 그레텔의 집은 똑같은 그레텔의 집이 아니라 그레텔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레텔 같은 사람은 누군가 무엇을 달라고 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준다. 

한스는 대상-그레텔, 사물-과 상호작용을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엄마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는데 한스는 '이미 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스는 자신의 행동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않는다. 그는 엄마가 시킨 일을 다음에 한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스는 인과 개념, 대상에 대한 연속 개념. 행동하기 전 상황에 관해 사고하여 빠르게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다. 그는 감정도 모른다. ‘저런,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하는 엄마의 말에 ‘다음에는 잘할게요.’라고 답한다. 

여기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목적이 무엇인지,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는 그레텔네 집에만 간다고 한다. 그는 또 말하지만 바보다. 멍청이는 계속해서 그레텔에게 간다. 그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도 그레텔은 무엇인가를 준다.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다. 

처음엔 그레텔이 바늘을 주었다. 그것을 남의 집 마차 건초더미에 찔러 넣고 그 마차 뒤를 따라간다. 그는 자기가 바늘에 찔리는 것이 겁나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바늘은 적당한 타나토스를 가진 도구이며 이천과 저 천을 연결해 주는 도구이다. 이것은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하다. 적당한 거절과 연결은 대인관계를 맺는데 작은 도구인데 꼭 있어야 한다. 바늘,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한스는 남의 마차 건초더미 뒤를 따라갔다. ‘저런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소매 속에 넣었어야지.’ 바늘은 소매 속에 있어야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괜찮아요. 다음번에는 잘할게요.’

칼을 받아왔다. 칼 또한 공격성이다. 이번에는 엄마가 말한 데로 자신의 소매 속에 넣어서 온다. 그러면 칼은 한스를 찌른다. 칼은 주머니에 들어있어 자신을 위협하는 자를 물리치게 도와주는 도구다. 그것은 주머니에 보관해야지, 소매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한스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나친 공격성은 타인에게 위협이기 때문이다. 

새끼염소는 유익한 동물로 뿔을 가졌지만 생명력이 있다. 지금은 작은 뿔이지만 앞으로 커져서 한스에게 길들여질 본능의 다른 측면이다. 뿔은 생명력 있는 공격성이다. 그것은 줄로 묶어서 자신이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는 공격성이다. 염소의 다리 4개를 묶었다는 것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의지, 작은 본능이 불편하니 묶어버린 것이다. 한스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고 오다가 새끼염소가 죽고 말았다.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염소라면 줄로 묶어 끌고 왔어야지.’ ‘괜찮아요. 다음엔 잘할게요.’

이번에는 먹을 수 있는 베이컨을 얻어왔다. 그것은 내 양식, 내 재능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스는 베이컨을 줄에 묶어서 끌고 왔다. 지나가는 개들이 먹었다. 내가 가진 소중한 양식을 사기꾼들이 빼앗지 못하도록 안전한 곳에 두어야 한다. 잘 숨겨야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베이컨은 네 머리 위에 얹어서 가져와야지.’

그레텔은 송아지를 주었다. 송아지는 앞으로 우유를 줄 준비를 하는 동물이며, 미래의 먹거리이다. 그 송아지는 지금은 어려서 보살펴 주어야 하지만 미래에는 한스를 보살펴 줄 가능성을 가졌다.  송아지를 머리에 얹으니 발버둥을 치며 한스의 얼굴에 발길질을 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이었다. 머리는 사고하고 예측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곳으로 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머리인데.

마지막에는 그레텔이 따라갔다. 그레텔이 같이 가준다며 한스를 따라갔다. 그녀는 한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 그녀를 외양간 기둥에 묶고 풀을 던져주었다. 엄마가 한스에게 눈빛을 주라고 하자, 소와 양의 눈알을 모두 빼내 그녀의 얼굴에다 던져주자 그녀는 도망치고 말았다. 엄마가 말한 눈빛은 감정의 교류를 말한 거지만 한스는 알아듣지 못했다. 

관계는 주고받아야 형성되는 것이다. 한스는 한 번도 그레텔에게 무엇을 준 적이 없다. 그레텔은 화가 나서 자유를 찾아 도망치고 그 후에는 한센의 신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림형제 민담 어리석은 한스 서두에는 한센의 엄마라고 나온다. 결국 그레텔은 한스의 엄마였다. 그레텔 같은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것,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먼저 해준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사고하고, 인지하여 반응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고 미리 해줌으로 아이는 수동적이 되고 자립심도 생기지 않는다. 아이가 한 행동을 듣고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라고 말한다. 아이가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엄마의 반응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엄마의 눈빛에서 나오는 감정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에 민감하니까.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뿐이다. 수용적이고 허용적인 부모라고 해서 모든 것을 받아주고 모든 생각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한스와 한센의 엄마의 관계처럼 바보와 바보 한스를 구원하려는 구원자 그레텔이 결혼해서 산다. 

세상의 수많은 구원자 그레텔, 한스같은 사람은, 처음부터 바늘로 찔렀어야 했어.

이전 06화 내일 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