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양심

by 자그노기

쪽파의 매운 향에 눈물이 말랐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김장 양념을 꺼내 놓고 봄동 겉절이를 떠올렸다.


농수산물 코너의 주인들은 몰려드는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 분주하다 보니, 나처럼 소극적인 손님은 쉽게 밀려나기 일쑤다. 추위에 주눅 든 듯 축 늘어진 쪽파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의 계획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줄기가 길든 짧든 맛만 좋으면 될 텐데, 나의 개똥철학은 왜인지 짧은 줄기를 고집했다. 훨씬 맛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에는 분명 봄동이 계산되어 있었지만, 야채 코너를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결국 8천 원에 쪽파 한 단을 샀다.


김장김치 때문에 잠시 잊고 지냈던 파김치는 우리 집 식탁의 감초다. 단을 풀고, 수염을 자르고, 겉껍질을 벗길수록 형편없는 쪽파를 판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겉모양만 번듯하고 단 속에 묻힌 어린 새싹 같은 쪽파가 대부분이었다.


흰 머리보다 짧고 시든 줄기를 뜯어내자, 남은 것은 초라한 모양새였다. 매운맛조차 느끼기 전에 밀려온 커다란 배신감에, 이걸 다시 싸 들고 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지쳐 버린 몸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다듬고 씻고 물기를 뺀 뒤 양념을 버무리자,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불편한 속내를 겨우 가라앉혔다. 모양만큼은 그럴싸한 파김치가 완성되었지만, 이런 채소를 판 데 대한 실망감에 나 역시 파김치가 된 기분이었다.


냄새나는 양심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는 건 아닐까.

쪽파 냄새처럼, 한 번 배면 쉽게 사라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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