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적이게도
남들의 삶이 어떨지 생각해보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빠의 삶이 어떨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알 것 같다.
너무나도 늦게 알아버린 탓일까.
이제는 아빠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난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가 암 판정을 받았다.
그날 나는
아빠의 눈물을 봤다.
가장의 눈물을 봤다.
뜨겁고도 처절한, 그 눈물을 봤다.
소파에 엎드려 소리 내며 울던 아빠의 뒷모습을 봤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 내가 울고 있으면
부모님은 우는 나의 곁을 지켜주셨는데
막상 나는 아빠의 눈물을 보고도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아빠.
이 한 마디 조차 하지 못했네.
아무 말 없이 아빠 곁에 잠시라도 있을 걸.
철없던 나는 볼 수 없었다.
부모의 짐을, 가장의 짐을, 아빠의 짐을.
아. 이제야 조금 철이 든 건가.
이제는 아빠의 짐이 너무나도 잘 보여서
그 무게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할 수 있어서
마음에 쥐가 난다.
마음이 아프다.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한평생을 가족만 보며 살아온
한평생을 가장으로 살아온
한평생을 앞만 보며 살아온
아빠의 삶은 어떨까.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렸을 적 나의 기억 속에 아빠는
출장 다니느라 집에 있던 날이 많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다른 집도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말이 좋아 출장이지.
타지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다 보면
분명 외로운 순간이 찾아올 텐데.
어떻게 견뎌냈을까.
회사가 부도나서 집이 휘청거릴 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토끼 같은 자식들 학교도 못 보낼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견뎌냈을까.
아빠가 우리를 마지막으로 업어본 날
마지막으로 손 잡은 날
그날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언니가 사랑의 결실을 맺은 날
마지막으로 큰 딸의 손을 잡은 날
그날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예전으로 돌아가서
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우리 아빠 참 열심히 살았다.
이제 아빠가 열심히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닌
아빠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남은 삶을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빠
고마워.
아빠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있는 거야.
아빠의 짐
이젠 내가 들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