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실제 대상'이라고 한 이유는 중고등학교 시절 나를 지탱해 주었던 아이돌 그룹이 있기 때문이다. '십대들의 우상'을 향한 그 열정은 실로 어두웠던 그 시절 한 줄기 빛이 되었고, 그들이 해체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이성을 잃고 우는 모습을 보였다.)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의 필연적 결과로서 모두 예상할 수 있듯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고 좋았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필히 고통을 동반하는 것임을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는 눈앞에 실제 하는 나의 이상이었으므로.
이상은 비현실적으로 너무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것이 비현실적이므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때 사랑에 깊이 '빠졌'었고, 그 속에서 온갖 환영과 신비를 경험하며 정신없이 허우적대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다.
살아돌아왔음에도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떠올리면 심장이 저릿했다.
하지만 빠지는 것들에는 '속수무책'의 성질이 있고, '인간 의지 밖'의 강렬한 느낌을 동반함으로 나는 그 아름다운 고통을 잊을 수 없었다.
짝사랑 이후 첫 연애를 시작한 것은 역시나 또 빠져드는 경험을 통해서였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온라인 채팅이 몇 번 이어졌고 나는 그 대화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캠퍼스 커플이 되어 있었다.
이상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깊은 내면과 슬픔을 타인에게 공유했고, 처음으로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상대가 남자였으므로 그것이 당연히 '연애'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그래서 손을 잡고 교정에 들어섰을 때, 그로서 공식적으로 캠퍼스 커플이 된 우리를 인지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그 아이가 듣는다면 황당하고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나의 빠져듦이 '이성'으로서의 끌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호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애에서 파생되는 각종 성적인 요소들이 관계에 처음 등장할 때마다 항상 머뭇거렸던 것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나에겐 좀 다른 것이었던 게 확실하다.
다양한 신체 접촉의 범위와 깊이로 가늠되는 연애의 '진도'는 항상 그쪽에서 '먼저' 나갔고, 나는 그럴 때마다 놀라고 아리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구와도 진정성이 동반된 관계의 시간이 길어지면 믿음과 사랑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위의 이유들로 인해 나는 자주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사랑에 관한 책들을 찾아 탐구하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나를 강렬하게 잡아 끄는 제목은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같은 것들이었다.
책을 찾아보았다는 것은 그것이 어려웠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나는 관계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도 나의 이런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테고 그래서 자주 불안해했으며 나도 마찬가지로 불안했다.
이 모든 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채 '진심'으로 그를 대하고자 했다.
그건 뭔가 공존할 수 없는 것을 동시에 쫓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에 결국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두려웠다.
그 시절 '상처받는 것'에 대해서라면 아주 치를 떨 정도였으므로, '내'가 누군가를 상처'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내게 "이놈아, 니는 상처를 너무 잘 받아. 그러지 마."라며 가슴 아파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에 분노와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절대 누구에게도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일은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되는 일이었으나, 그 진정한 사랑에 둘의 견해 차이가 있음을 시간이 감에 따라 서서히 알게 되었고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전화로 이별을 고했고, 얼마 후 휴가 나온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 '진심'이었던 6년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진심이었던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최소한의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이 관계를 끝낸 것은 나였고, 6년의 연애 기간 동안 사랑을 자주 의심하고 괴로워했으므로 의도치 않게 그에게 희망고문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듬해에 의심할 여지없는 빠져듦에 따라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고,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끼며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아마 고개를 갸웃할 것 같다. 나와 강렬한 성적 욕망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아득히 먼 거리가 느껴지므로.
발정기에 이른 포유류의 암컷처럼, 나는 결혼을 하고 첫 임신을 한 그 시기에 정확히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꼈고 아쉽게도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철저히 긴 휴지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 번의 출산을 끝으로 나는 이번 생에서 발정을 해야 할 이유를 상실한 탓인지 내 호르몬은 다시금 그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만 같다.
물론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확언은 못하겠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뭐 내 입장에서도 크게 나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게 좋겠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 20대의 대부분을 나는 여러 색깔의 사랑에 '빠지며' 지냈고, 그게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내 자신을 의심하는 데 보냈으며 20대 후반인 29살에 이르러 마침내 사랑임을 확신하며 사랑의 종착역에 도착했다.
늘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내 일이라, 의심할 여지없이 이렇게 빠져드는 것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내가 의심 없이 빠져드는 것은 대개 나의 내면 욕구와 깊숙이 닿아있는 것들이기에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